죽은 뒤 깊숙한 바다 밑으로 가라앉은 고래가 해양 생물들이 모여 사는 하나의 생태계로 재탄생했다. 이런 ‘웨일 폴(Whale fall)’ 현상은 심해의 생물 다양성을 유지하는 친환경적 동력으로 학자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비영리 단체 ‘대양 탐사 트러스트(Ocean Exploration Trust, OET)’가 운용하는 해양 조사선 ‘EV 노틸러스(EV Nautilus)’는 28일 공식 유튜브 채널을 통해 미국 캘리포니아 심해 바닥에 가라앉아 다양한 생물들의 터전이 된 ‘웨일 폴’ 사례를 소개했다.

영상은 지난 2019년 노틸러스호에 탑재된 무인 심해 탐사선 헤라클레스가 캘리포니아 몬터레이 만 해양보호구역(Monterey Bay Marine Sanctuary)에서 촬영했다. 심해의 특성상 당시 영상은 뿌옇고 시야가 어두웠던 탓에 ‘EV 노틸러스’ 측은 특별히 디지털 리마스터링 버전을 제작했다.

심해에 가라앉은 고래 사체는 해양생물들의 국지적 생태계 역할을 한다. <사진=EVNautilus 유튜브 공식 채널 영상 'Epic Whale Fall - 2019| Nautilus Live (Remastered!)' 캡처>

발달한 기술 덕에 한층 선명해진 영상은 약 5분에 걸쳐 심해의 미스터리한 ‘웨일 폴’을 보여준다. 길이 약 4~5m로 추정되는 고래 사체에는 다양한 심해어와 문어들이 들러붙어 남은 조직을 천천히, 그리고 열심히 먹어치운다.

죽은 고래 주변에 모여든 해양 생물 중에는 눈에 잘 띄지 않는 바다 곤충이나 박테리아도 있다. 이들이 고래의 뼈 표면에 각자 자리를 잡고 무수하게 번식하면서 거대한 사체는 울창한 삼림처럼 변했다.

‘웨일 폴’은 생명체가 삶을 영위하다 죽으면 자연으로 돌아가는 진리를 잘 보여준다. 고래는 죽은 뒤 해안으로 밀려오거나 바다에서 부패하는데, 일부는 무게나 조류의 영향으로 약 1000m 이상 깊은 해저로 가라앉기도 한다. 이런 ‘웨일 폴’은 수십 년에 걸쳐 심해 생물들에게 먹이를 제공하는 국지적 생태계를 창조한다.

고래 사체에는 다양한 심해 생물이 들러붙어 양분을 섭취한다. <사진=EVNautilus 유튜브 공식 채널 영상 'Epic Whale Fall - 2019| Nautilus Live (Remastered!)' 캡처>

1970년대부터 학자들이 관심을 갖고 지켜본 ‘웨일 폴’은 보다 바다 깊은 곳까지 내려가 생태계를 선명하게 담는 관측 기술 덕에 최근 연구가 활발하다. 생명체의 순환에 그치지 않고 심해 생물의 생태 및 생물 다양성 보존 등 다양한 관점에서 연구가 가능한 신기한 현상으로 받아들여진다.

‘EV 노틸러스’는 “이번 영상으로 우리는 ‘웨일 폴’이 감춘 신비로움에 한발 더 다가갈 수 있었다”며 “현재로서는 고성능 무인 탐사기 없이는 볼 수 없는 심해를 이해하는 것은 우주의 수수께끼를 탐구하는 것만큼 가치 있는 활동”이라고 전했다.

정이안 기자 anglee@sputnik.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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