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생태계 최상위 포식자 범고래가 다른 종 고래의 새끼를 데리고 유유히 헤엄치는 희한한 상황이 포착됐다. 범고래가 천적인 혹등고래를 도와주고 사라지는 것을 목격했던 학자들은 그 원인을 두고 다양한 설을 내놨다.

캐나다 야생동물 학술지 ‘Canadian Journal of Zoology’는 범고래가 고래 새끼와 함께 이동하는 진귀한 광경이 아이슬란드 서부 바다에서 장기간 확인됐다고 최근 밝혔다.

목격자들이 촬영한 사진과 영상을 분석한 생태학자들은 범고래와 동행한 새끼가 참거두고래인 점에 주목했다. 이 상황을 두고 학자들은 범고래가 다른 종의 고래 새끼를 양육하는 첫 사례라고 판단했다. 일부에서는 범고래가 새끼 고래를 유괴했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학술지 'Canadian Journal of Zoology'에 소개된 암컷 범고래 세디스와 참거두고래 새끼 <사진=Canadian Journal of Zoology 공식 홈페이지>

문제의 범고래는 암컷으로, ‘세디스’라는 이름이 붙은 추적 관찰종이다. 세디스가 참거두고래 새끼와 동행하는 것이 처음 목격된 것은 지난 2021년 8월로, 이후에도 여러 차례 비슷한 상황이 카메라에 잡혔다.

세디스의 주위에는 다른 범고래 2마리가 목격된 바 있지만 참거두고래는 새끼 한 마리 외에 없었다. 참거두고래는 평소 무리지어 살기 때문에 새끼 하나만 덩그러니 떨어진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학자들은 세디스가 단지 이 고래를 데리고 다닐 뿐만 아니라 제대로 돌본다고 보고 있다. 참거두고래 새끼가 세디스를 비롯한 범고래들의 가슴지느러미 바로 뒤에서 헤엄치는 일명 에셜론 대형(echelon position)을 취한다는 것이 근거다. 이렇게 대형을 짜면 새끼 고래는 꼬리지느러미 움직임을 줄여 편하게 헤엄칠 수 있다.

학자들은 범고래가 밧줄에 묶인 혹등고래를 풀어주고 사라지는 기현상을 목격하기도 했다. <사진=pixabay>

일부 학자는 지능이 높은 범고래들이 참거두고래를 유괴한 뒤 끌고 다닌다고 본다. 아이슬란드 앞바다에서는 범고래와 참거두고래 무리의 접촉이 흔하기 때문이다. 이 지역 범고래는 참거두고래를 사냥하지 않지만, 세력 다툼은 종종 일어나기 때문에 새끼 하나를 일종의 볼모로 잡았다는 생각이다.

한편에서는 출산 경험이 없는 세디스가 다른 종의 새끼 고래를 통해 육아 욕구를 충족할 가능성을 제기했다. 이런 견해를 보이는 학자들은 젖이 나올 리 없는 세디스 때문에 참거두고래 새끼가 비정상적으로 말랐다고 지적했다. 

범고래를 포함한 생태계 최상위권 동물이 사냥감 또는 다른 종의 새끼와 동행하는 것은 드물지만 전에도 포착됐다. 호주 고래 보호단체 웨일워치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WWWA)는 지난해 1월 범고래 무리가 밧줄에 엉켜 꼼짝 못 하는 혹등고래를 구하는 영상을 공개했다. 호주 남서부 브레머만을 항해하던 WWWA 조사원들은 어선 밧줄에 묶인 7m 혹등고래를 돌고래 무리가 풀어주고 유유히 사라지는 광경을 목격했다.

세렝게티국립공원에서 포착된 장면. 암사자가 누 새끼와 나란히 걷고 있다. <사진=트위터>

비슷한 시기 탄자니아국립공원은 세렝게티국립공원 내에서 암사자가 누(wilderbeast) 새끼를 데리고 어디론가 향하는 영상을 선보였다. 어미인 양 암사자 뒤를 졸졸 뒤따르는 누는 사자들이 가장 손쉽게 사냥하는 먹잇감이다. 과거에는 누 무리를 사냥하던 암사자가 어미로부터 떨어진 새끼를 확보하고 누 무리들 뒤쫓아가 돌려주는 상황도 목격됐다. 

학자들은 생태계 포식자가 다른 종, 특히 사냥감의 새끼를 데리고 다니거나 돌보는 이종 양육의 미스터리를 아직 풀지 못했다. 새끼 누와 동행하는 암사자의 경우 고양잇과 동물에서 가끔 보이는 기현상으로 추측할 뿐이다. 이번에 확인된 범고래의 희한한 행동 역시 그 정확한 원인을 알기 위해서는 연구가 더 필요하다. 

이윤서 기자 lys@sputnik.kr 

⇨스푸트니크 네이버포스트 바로가기
⇨스푸트니크 유튜브 채널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