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이미 죽어있다.”

세계적으로 히트한 일본 만화 ‘북두의 권(北斗の拳)’에 등장하는 이 명대사는 만화 탄생 40년이 지난 지금도 마니아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다.

만화의 주인공 켄시로는 2000년 역사를 자랑하는 북두의 권 계승자다. 유일전승을 원칙으로 하는 북두의 권은 눈에 보이지 않는 적의 ‘비공(秘孔)’, 즉 급소를 찔러 치명적 내상을 입히는 일격필살권이다. 켄시로에게 당한 적들은 신체 내부가 파열되면서 근육이 뒤틀리고 장기가 터져 피를 뿜으면서 죽고 만다. 

그렇다면 북두의 권의 핵심인 ‘비공’은 과연 실존할까?

<사진=극장판 애니메이션 '북두의 권' 스틸>

비공이라는 말은 자극할 경우 심하면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일종의 경혈(經穴)과 비슷하다. 중국 무술가 사이에서 비공이라는 단어는 분명 과거에 사용됐지만 현재로서는 존재 자체가 신화처럼 돼 버렸다.

일생을 격투에 바친 사람들도 비공을 믿는 경우는 많지 않다. 일부 광적인 브루스 리(이소룡) 팬들은 그가 암살자로부터 비공을 공격당해 죽었다고 믿는다. 2004년 해외 격투가 사이트에 단 한 방에 실수로 상대를 죽이고 말았다는 글이 올라와 논란이 됐지만, 진위는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어둠의 기술 점혈(點穴)
고대 중국에서는 점혈이라는 고도의 격투술이 존재했다고 전해진다. 일본에서 ‘급소술(急所術)’로 부르는 점혈은 인체에 분포한 특정한 혈을 정확히 찔러 상대를 일격에 쓰러뜨리는 무시무시한 기술이다.

점혈은 인체의 경선(經線), 즉 해부학적으로 서로 다른 신체부위를 연결하는 선을 따라 흐르는 기를 방해하거나 아예 그 기를 빼내 상대를 무너뜨린다. 눈에 보이지 않는 급소를 찔러야 하므로 ‘암흑의 필살기’로 불린다.

중국 무협소설이나 영화 속에 심심찮게 등장하는 점혈은 북두의 권에서 언급한 비공과 흡사하다. 하지만 지금까지 보고된 의학적 기록에는 비공파괴, 혹은 점혈로 사람을 죽였다는 내용이 남아있지 않다. 과연 비공이나 점혈은 만화가나 소설가들이 지어낸 이야기일까?

비공 비슷한 개념이 등장하는 영화 '킬빌' <사진='킬 빌2' 스틸>

■심장진탕(心臓震盪)
비공을 둘러싼 구체적인 의학적 기록은 없지만 과학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사건들을 담은 글은 남아있다. 아주 경미한 타격을 입은 사람이 엄청난 중상을 입었다던가, 아예 죽음을 맞았다는 기록들이 곳곳에서 발견됐다.

‘심장진탕’도 그 중 하나다. 가슴에 아주 약한 타격을 입는 것만으로 심장이 돌연 극심한 경련상태에 빠져 단시간(1~2분)에 죽음에 이른다고 한다. 영화 ‘킬 빌(Kill Bill)’ 2편에 등장하는 파이 메이의 궁극의 기술 ‘오지심장파열술(Five Point palm Exploding Heart Technic)’ 역시 여기서 모티브를 따왔다. 영화 속에서 이 기술은 몇 발짝도 떼기 전에 상대를 심장파열로 죽게 만드는 최고의 살인기술로 묘사된다.

일부 의사들은 심장경련이나 파열 등을 종합한 ‘심장진탕’이 운동경기에서도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하키나 야구를 하던 선수가 경혈에 경미한 부상을 입고 심장경련 등을 일으켜 심하면 사망하는 경우가 실제 발생한다는 설명이다. 2000년대 초 미국에서는 아이들 싸움을 말리던 40대 교사가 아이가 잘못 휘두른 팔꿈치에 가슴을 살짝 맞은 직후 돌연사했다는 기록이 전해졌다.

심장진탕은 충격을 받은 심장이 심실세동, 즉 심실 근육 경련을 일으켜 혈액을 제대로 내보내지 못할 때 주로 발생한다. 심장진탕이라는 용어 자체가 아직 생소하지만, 이를 연구한 논문에 따르면 128건의 발생사례 중 치사율은 84%에 이른다.

심장진탕은 경련이 막 시작됐을 때 제대로 조치해도 사람을 살릴까 말까한 무시무시한 증상이다. 특히 의사들은 시속 30마일 정도로 느리게 날아온 물체에 맞더라도 심장진탕을 일으킬 수 있다고 경고한다.

■경동맥에 대한 충격
경동맥(頸動脈)은 뇌에 혈액을 공급하는 중요한 혈관이다. 이 경동맥에 충격이 가해질 경우 치명적이라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특히 경동맥동(頸動脈洞)이라 해서 동맥이 둘로 나뉘는 부분에 충격을 가할 경우 인체는 돌이킬 수 없는 상태에 빠질 수도 있다.

경동맥동에 충격을 받은 사람은 뇌나 신경이 다쳤을 때처럼 부분적인 마비증세나 뇌줄중에 빠진다. 심하면 목숨을 잃기도 한다. 특히 격투가들이 목숨을 건 싸움에서 상대방의 경동맥동을 노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불가사의한 죽음
2000년대 중반 미국에서 13세 소녀가 놀이터 정글짐에서 떨어져 죽는 사고가 발생했다. 의사들은 이 소녀의 죽음에 의문을 가졌다. 떨어지면서 머리에 충격을 받은 줄 알았는데, 부검 결과 외상이 전혀 없었던 탓이다.

소녀의 사망원인은 망상세포를 경유한 진동에 의한 충격사로 결론 내려졌다. 비공 혹은 점혈을 연구한 끝에 ‘Death Touch’라는 책을 낸 마이클 케리는 소녀가 떨어질 때 두개골에 자리한 매우 민감한 비공에 충격을 받아 즉사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하필 격투가들도 가장 위험한 곳으로 손꼽는 부분에 충격이 가해졌다. 작은 비공이 충격을 받았기 때문에 외상이 전혀 없지만 소녀의 목숨을 빼앗기는 충분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비공은 실존할까
비공의 유무를 둘러싼 연구는 비록 소수이긴 하지만 현재도 이어지고 있다. 1999년 한 스포츠 의학잡지에 게재된 기사는 비공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을 증폭시켰다.

기사는 점혈, 혹은 급소술의 달인을 자처하는 C.테리라는 인물이 실시한 실험을 담고 있다. 테리는 비공의 존재를 밝히기 위해 지원자를 모집했고 모두 12명이 그의 도장을 찾았다.

테리는 급소술을 시험하기 위해 비공 중에서도 안전한, 잠시 마비상태에 빠지는 곳을 찌르기로 했다. 실험 결과 등에 자리한 비공을 찔린 참가자는 의식을 잃고 그대로 쓰러졌다. 바닥에 누운 참가자들은 짧게는 11초, 길게는 55초까지 반응이 없었으나 이내 의식을 되찾았다.

신기한 것은 실험에 참가했던 사람들의 뇌파측정 결과다. 비공을 맞고 쓰러진 참가자들의 뇌파를 측정했더니 혈압저하 등 어떤 생리적 영향도 받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인체에 분포한 비공을 눌러 잠시 기의 흐름을 정지시켜 참가자를 마비시켰다는 케리의 주장이 어느 정도 설득력을 갖게 된 셈이다.

이와 관련, 당시 잡지는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이런 현상에 관한 과학적 근거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기나 경선, 비공이 실제로 존재하는 지와 별개로 케리의 실험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실험을 실제로 본 사람이라면 아마 비공의 존재를 믿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정이안 기자 anglee@sputnik.kr

⇨스푸트니크 네이버포스트 바로가기
⇨스푸트니크 유튜브 채널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