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가마쿠라 시대부터 존재해온 닌자는 다이묘를 위해 정보를 모으던 첩보원이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요인을 감시하거나 잠입, 암살, 교란작전을 수행했던 닌자는 은밀한 행동과 각종 닌자술을 사용했다.

적진을 제집처럼 드나들고 발자취를 남기지 않으며,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닌자들은 ‘007’ 시리즈 빰치는 첩보무기를 지녔다. 슈리켄(수리검) 등 익히 알려진 무기도 있지만, 쌀이나 계란 등 상상을 초월하는 것들도 있다. 먼 옛날 닌자들의 무기들은 생활 속에서 구할 수 있는 것이면서 과학적으로 완성도 높은 것들이 포함돼 감탄을 자아낸다.

■미즈구모(水蜘蛛)

재현된 미즈구모 <사진=やってみた現世で忍術 유튜브 공식채널 영상 '현세의 인술 재현하다-미즈구모 편' 캡처>

일본 영화나 애니메이션을 보면 적의 요새에 잠입하기 위해 물 위를 걷는 닌자가 등장한다. 이들이 사용하는 것은 '미즈구모'로 아주 과학적으로 만들어진 닌자들의 대표 도구다.

원반형태의 미즈구모는 얇은 나무판이나 동물의 가죽을 엮어 만들었다. 가운데는 발로 디딜 수 있는 판이 자리한다. 넓은 판이 부력을 만들어 물에 뜨는 원리다.

영화에선 미즈구모를 사용해 닌자들이 예수마냥 물 위를 걸어 다니지만 과학적으로는 실현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학자가 많다. 물 위를 걷기보다는 튜브처럼 잡고 떠있는 용도로 사용했을 가능성이 더 크다는 이야기다. 다만 늪지대에서는 미즈구모가 아주 효과적인 이동수단이었으리라는 의견도 있다.

■원뿔 도청기
임무를 위해 닌자들은 아주 작은 말소리도 들어야 했다. 그 시절 도청기가 있을 리 만무했으므로, 닌자들은 귀에 대고 정보를 캐낼 소형 원뿔을 소지했다.

나무나 쇠 등으로 된 이 원뿔은 넓은 쪽을 벽이나 문에 대고 좁은 쪽을 귀에 대는 식으로 사용했다. 지금 생각하면 장난감 같지만 당시로선 실용적인 도구였다. 닌자 자체의 청력도 중요했지만 원뿔 도청기는 반드시 소지해야 할 첩보 무기였다. 원뿔 도청기는 크기가 클수록 적의 대화를 듣기 좋았는데 무게나 크기가 문제였다. 때문에 닌자들은 자신의 기본 청력에 맞춰 적당한 크기의 원뿔 도청기를 깎아 소지했다. 

■비녀 

비녀는 네코테와 마찬가지로 쿠노이치가 주로 사용했다. <사진=영화 '시노비도' 스틸>

비녀는 닌자가 애용한 암기다. 여성들이 머리를 고정할 때 사용하는 비녀는 길고 끝부분이 뾰족해 아주 훌륭한 암기였다.

에도시대 비녀가 폭넓게 보급되자 닌자들은 이를 암기로 적극 사용했다. 닌자들은 손쉽게 구할 수 있는 비녀로 목표물의 급소를 찔러 그림자처럼 임무를 수행했다. 일부 닌자는 비녀 끝에 치명적인 독을 발랐다. 특히 여성 닌자(쿠노이치)들은 비녀를 아무 의심 받지 않고 소지할 수 있었다. 

■귀뚜라미
닌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암행이다. 기척을 숨기고 움직이는 것은 우수한 닌자를 가리는 척도였다. 다만 아무리 뛰어난 닌자라도 바스락거리는 나뭇잎이 널린 정원에서 소리를 내지 않기란 불가능했다.

이럴 때 닌자들은 귀뚜라미들을 사용했다. 대나무를 쪼개 만든 작은 바구니에 넣은 귀뚜라미들은 위급한 상황에서 닌자들이 미처 지우지 못한 소리들을 효과적으로 덮어줬다.

기록에 따르면, 닌자들은 특별한 혼합물을 이용해 귀뚜라미를 자유롭게 울릴 수 있었다. 물론 울고 있는 귀뚜라미들을 뚝 그치게 하는 방법도 일부 상급닌자들은 능숙하게 사용했다. 

■원통 손난로
닌자들은 한겨울 첩보활동 중 가혹한 추위를 견뎌야 했다. 손이나 발에 동상이라도 걸리면 닌자로서 심각한 상황에 처하기 때문에 지금의 손난로 같은 도구를 사용했다.

대나무나 철, 동으로 만든 길쭉한 몸통 안에는 화약이나 천, 술 등을 조합한 천천히 불에 타는 소재가 들어갔다. 불이 붙으면 몇 시간이나 가는 이 도구 덕에 닌자들은 추운 겨울 조금이나마 온기를 유지할 수 있었다. 이 도구는 담뱃불을 붙이거나 간단한 요리를 할 때, 장작불을 지필 때도 요긴하게 쓰였다. 지금으로 따지면 손난로와 라이터 역할을 동시에 한 셈이다.

■쌀알(오색미)

닌자들은 생쌀 알을 염색해 암호를 만들었다. <사진=pixabay>

주변의 온갖 물건을 무기로 쓰는 닌자에게는 쌀조차 훌륭한 도구였다. 기밀정보를 다루는 닌자들은 쌀을 이용해 동료와 정보를 주고받았다.

닌자들은 쌀알을 빨강, 파랑, 노랑, 검정, 보라색으로 염색한 ‘오색미’를 썼다. 오색미를 적이나 일반인이 알아보지 못하는 길가나 통로에 뿌렸다. 색깔 조합으로 문장을 만드는 것도 가능했다. 이를 확인한 동료 닌자들은 적의 동태, 작전 수행 날짜, 후퇴 등 중요한 정보를 얻었다. 당시 닌자들은 오색미를 통해 100가지 넘는 암호를 구사했다고 전해진다.

■고양이 눈(猫目)
일급 스파이였던 닌자들에게 타이밍은 매우 중요했다. 시간을 알아야 정확한 때에 적진에 잠입하고 빠져나오는 것이 가능했다. 손목시계가 있을 리 만무했던 그 시절, 닌자들이 이용한 것이 고양이의 맑고 투명한 눈이었다.

동물의 눈은 주변 광량에 따라 동공 크기가 변한다. 그 중에서 고양이의 동공 변화가 특히 뚜렷하다. 한밤중이라면, 고양이의 동공은 완전히 닫혀 동그랗게 보인다. 태양이 가장 밝게 빛나는 정오 무렵 고양이 동공은 가장 얇아진다. 즉 닌자들은 고양이 동공의 크기를 보고 대략적인 시간을 파악, 작전을 수행했다. 

■네코테(猫手)

쿠노이치가 즐겨 사용한 네코테 <사진=電撃ランキング 유튜브 공식채널 영상 '흉악한 닌자 무기 8선' 캡처>

말 그대로 고양이 발이다. 고양이 동공으로 시간을 가늠했던 닌자들은 고양이 발을 모방한 네코테를 암기로 사용했다.

물론 진짜 고양이 발을 잘라 사용한 건 아니다. 고양이 발처럼 날카로운 칼날을 쇠붙이 등으로 만들어 손가락마다 끼는 형태였다. 끝부분에 독을 발라 암살용으로도 썼다. 기록에 따르면 남성 닌자보다는 쿠노이치들이 즐겨 사용했다. 긴급한 상황에서는 주변의 대나무로 급조했다는 기록도 있다.

■달걀껍질
영화를 보면 ‘펑’ 소리와 함께 자욱한 연기를 내며 닌자가 사라진다. 닌자들은 흔히 구할 수 있는 달걀껍질에 탈출용 분말을 넣어 휴대했다.

손재주가 남달랐던 닌자들은 계란의 내용물을 빼내고 껍질만 남기는 데 능숙했다. 바늘로 계란껍질 일부에 구멍을 내고 속을 비운 뒤 다양한 가루를 넣었다. 밀가루 같은 흰 분말을 넣으면 훌륭한 탈출 도구가 완성됐다. 매운 고춧가루나 소금, 작은 쇳조각들을 넣어 무기로도 사용했다. 고춧가루가 잔뜩 들어간 계란을 적의 얼굴에 세게 던지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공격무기가 됐다.
 
■야타테(矢立て)
야타테는 붓이나 작은 먹, 벼루를 넣는 통이다. 그 시절 휴대용 필통이라고 보면 이해가 쉽다. 비녀와 마찬가지로 어디든 휴대해도 의심 살만한 물건이 아니었기에, 닌자 대부분이 야타테를 애용했다.

그렇다고 야타테 속 붓으로 적을 공격한 것은 아니다. 닌자들은 야타테 속에 쇠로 만든 암기나 화살촉, 공격용 수리검, 독 등을 숨겼다. 이 강력한 무기들은 위급상황 시 손쉽게 꺼내 사용할 수 있도록 야타테 속에서도 일정한 순서대로 보관됐다.

정이안 기자 anglee@sputnik.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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