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깊숙이 구멍을 내고 엄청난 지열에너지를 추출하는 계획이 미국 스타트업에 의해 추진된다. 탄소중립이 최고 가치가 된 시대, 작은 회사가 제시한 지열에너지의 가능성에 학계와 업계 시선이 집중됐다.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교(MIT) 플라즈마 핵융합센터 출신들로 구성된 퀘이즈 에너지(Quaise Energy)는 5일 공식 채널을 통해 지열을 뽑아 태양광이나 풍력, 수력, 바이오매스와 함께 재생에너지로 활용하는 프로젝트를 소개했다.

2020년 창업한 퀘이즈는 지표 아래의 방대한 지열에너지를 이용하는 것이 최종 목표다. 깨끗하고 무한대에 가까운 지열에너지를 이용하려면 깊은 구멍을 파야하는데, 지금까지 사람이 물리적으로 낸 구멍은 러시아 콜라반도 초심도 굴착 갱도의 약 12㎞가 한계다. 

퀘이즈가 이보다 깊은 구멍을 내려면 단단한 암석을 깎아내고 부스러기를 죄다 지상으로 운반해야 한다. 마찰이 불가피한 굴착기는 180℃를 넘어도 제대로 작동할 내구성이 요구된다. 이 조건을 맞추더라도 드릴을 몇 ㎞에 걸쳐 가동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지구 깊이에 따른 온도. 약 20㎞만 파고 내려가도 내부 온도는 500℃나 된다. <사진=퀘이즈 에너지 공식 홈페이지>

때문에 퀘이즈는 드릴 대신 열을 떠올렸다. 회사 관계자는 “밀리미터 파장의 전자방사로 원자를 녹일 수 있다”며 “MIT 플라즈마 핵융합센터에서 연구한 자이로트론을 굴착에 동원하는 기술을 개발 중”이라고 전했다.

핵융합로의 플라즈마 가열에 자이로트론은 강력한 자기장 안에서 전자를 고속 진동시켜 전자방사 빔을 발생한다. 이를 굴착기에 접목하면 지구 깊숙이 구멍을 낼 수 있다는 게 퀘이즈 설명이다.

회사 관계자는 “메가와트 급 자이로트론을 사용하면 아무리 단단한 암반도 몇 달 안에 깊이 20㎞까지 파고들 수 있다”며 “이 깊이가 되면 암석 온도는 500℃에 이른다. 이만큼 뜨거우면 물이 수증기와 같은 초임계 상태가 되는데 이를 발전에 이용할 수 있다”고 전했다.

초임계 상태란 임계점을 넘는 온도와 압력을 가한 물질의 상태다. 이런 상황의 물질을 초임계 유체라고 한다. 초임계에 접어든 물은 아무리 압력을 가해도 액화하지 않는 고밀도 기체와 같이 존재한다.

신개념 굴착 시스템을 고안한 퀘이즈는 첫 번째 자금조달에서 약 720억원을 모았다. 기존 굴착 시스템에 핵융합 기술을 접목, 지구 중심에 접근한다는 비전에 관심이 쏠렸다.

퀘이즈는 러시아가 세운 기록을 깨고 약 20㎞의 구멍을 지구에 낼 계획이다. <사진=퀘이즈 공식 유튜브 채널 영상 'Quaise | The Future of Clean Energy' 캡처>

퀘이즈 관계자는 “이번에 모은 자금을 바탕으로 2년 이내에 실제 운용할 장치를 개발할 예정”이라며 “순조롭게 진행되면 오는 2028년 석탄 대신 지열과 증기를 활용한 친환경 발전소가 탄생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회의적인 반응도 없지 않다. 학계는 지열이 세계 에너지의 약 8.3%, 세계 인구 17%를 감당할 수 있지만 지열발전 개발이나 성장률이 너무 낮다고 지적했다.

퀘이즈 주장대로라면 현시점에서 마음만 먹으면 40개국 가까이가 지열에너지로만 생활할 수 있다. 다만 지열발전이 세계 전력 공급량 중 차지하는 비율은 0.5%도 안 된다. 각국 정부 계획대로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실현하려면 지열발전이 매년 13%씩 커나가야 하는데 현재 성장률은 극히 미미하다.

지열에너지는 전부터 연구 가치를 인정받았지만 태양광이나 풍력에 비하면 난제가 많다. 때문에 ‘잊힌 재생에너지’로 불렸다. 이에 대해 퀘이즈 에너지는 “확실한 것은 위험한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시간은 시시각각 줄고 있다는 사실”이라며 “지금이 밑바닥이라면 지구를 파고들 가능성에 걸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정이안 기자 anglee@sputnik.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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