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중세 방어구 건틀릿이 스위스 성터 발굴 과정에서 출토됐다. 상태가 양호하고 제작 기술이 뛰어난 건틀릿은 14세기 것으로 추측됐다.

스위스 취리히 주정부는 19일 공개한 조사 보고서에서 키부르크(Kyburg) 성 발굴 도중 잘 보존된 14세기 건틀릿 한 쌍이 나왔다고 전했다. 연구팀은 이 건틀릿이 중세 유럽의 뛰어난 무구 제작 기술을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건틀릿이 발견된 장소는 성의 남동쪽이다. 키부르크 성내 공방과 같은 지하실에서 확인된 건틀릿의 주변에서 멀쩡한 망치와 핀셋, 펜치, 열쇠, 칼, 탄환 등 금속제 공구와 도구 50점 이상이 같이 나왔다. 

14세기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건틀릿. 스위스에서는 이런 정교하고 잘 보존된 건틀릿이 나온 전례가 없다. <사진=취리히 주정부(Kanton Zurich) 공식 홈페이지>

오른쪽 건틀릿은 일부분의 칠이 벗겨져 녹이 슬었지만 상태가 양호했다. 왼손 건틀릿은 일부가 사라졌지만 남은 부품만으로 오른쪽과 한 쌍임을 알 수 있다. 중세 유럽의 건틀릿은 잘 발굴되지 않는 데다, 이번 유물은 보존이 잘 됐다는 점에서 학계의 관심이 모였다.

조사 관계자는 “14세기 건틀릿 중에 이만큼 섬세한 디자인과 장식이 눈에 띄는 것은 아주 드물다”며 “동시대 건틀릿은 지금까지 스위스에서 5개밖에 발견되지 않았으며, 모두 이 키부르크 성의 것만큼 상태가 좋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발견된 건틀릿은 철판을 비늘 모양으로 배치하고 측면을 리벳으로 고정했다. 연구팀은 금속을 섬세하게 두드려 모양을 잡은 점, 정교한 리벳으로 고정한 점이 인상적이라고 평가했다. 겉면에 바른 도료 역시 품질이 좋은 편이라는 입장이다.

오른쪽 건틀릿의 분해도 및 일부만 남은 왼쪽 건틀릿 <사진=취리히 주정부(Kanton Zurich) 공식 홈페이지>

조사 관계자는 “기사들의 손 보호구로 유명한 건틀릿의 역사는 12세기 후반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며 “초반에는 가죽 장갑에 철판을 덧댄 벙어리장갑 모양이 일반적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초기 건틀릿은 스위스에서 13세기 후반까지 널리 사용됐다”며 “14세기에 개량이 이뤄지면서 손 전체를 덮는 벙어리장갑 스타일을 버리고 손가락 하나하나를 철판이 감싸는 구조로 발전했다”고 덧붙였다.

건틀릿의 개량은 보호 능력 강화 차원도 있지만 칼의 디자인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조사 관계자는 “철판이 손가락 하나하나를 덮은 건틀릿도 초기에는 구부릴 수 있는 부위가 엄지뿐이었다”며 “15세기까지 이런 디자인이 유지되다 검을 제대로 쥐기 위해 건틀릿도 맞춰 제작됐고, 결과적으로 소맷부리가 좁고 손목과 손가락 움직임을 위해 관절 플레이트 구조가 강화됐다”고 언급했다.

건틀릿이나 투구 등 중세 기사나 병사의 방어구는 무기의 형태나 전투 양상에 맞춰 개량됐다. <사진=pixabay>

연구팀은 이번에 나온 건틀릿이 14세기 후반부터 15세기에 걸친 대장간 기술 발달과 연관이 있다고 추측했다. 실제로 스위스를 비롯한 유럽 국가의 대장간 무구 가공 기술은 이 시기 형상과 기능면에서 정점을 찍었다. 중세 말기 대장장이가 상당한 기술을 사용해 손목과 손가락 모두 움직이는 건틀릿을 만들었다는 기록도 남아있다.

조사 관계자는 “스위스에서 이런 건틀릿은 아주 드물다. 뭣보다 건틀릿의 유형학적 발전 및 소유자와 관련된 역사 탐구 등 흥미진진한 연구로 연결되는 발견”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취리히 주정부는 키부르크 성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중세 무구 가공 기술을 보여주기 위해 이번 건틀릿의 복제품 전시를 오는 3월 말부터 진행할 계획이다.

이윤서 기자 lys@sputnik.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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