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에 의해 형성된 일명 히로시마 유리(the Hiroshima glasses)가 태양계의 기원을 밝혀낼 가능성이 제기됐다.

프랑스 국립 과학센터(CNRS) 연구팀은 최근 공개한 조사 보고서에서 일본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이 생성한 물질을 분석, 태양계 탄생의 배경을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잘 알려진 것처럼 히로시마는 1945년 8월 6일 미국의 원자폭탄이 투하되면서 궤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다. 사망자만 16만 명을 넘었고 방사능 오염에 의한 암 발생률 상승 등 다양한 악영향이 지역사회에 초래됐다.

약 80년이 지난 현재 히로시마 만의 생태와 지질학적 변화를 조사한 CNRS 연구팀은 히로시마 만에 폭넓게 분포하는 '히로시마 유리'에 주목했다. 이는 원자폭탄 폭발 시 엄청난 열파와 낙진에 의해 형성된 물질로 정의됐으며, 최근 학계에도 보고됐다.

히로시마 원자폭탄 투하 상황을 묘사한 일러스트 <사진=pixabay>

조사를 이끈 CNRS 네이던 에셋 박사는 "상공 580m에서 폭발한 원자폭탄은 반경 260m 범위에 약 1000만℃, 100만 기압의 플라즈마 화구를 형성해 지상에 6287℃의 열파를 뿜었을 것"이라며 "폭발로부터 0.35초 후, 화구의 압력은 주위 대기의 압력에 맞춰 급격히 감소해 10초 이내에 온도는 1726℃에서 1226℃로 저하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 결과 폭발 직후 0.5초에서 2초 사이에 콘크리트와 철, 알루미늄의 합금, 공업용 유리와 토양이 순식간에 기화되면서 모래와 하천의 물, 대기와 혼합돼 히로시마 유리가 생성됐다"며 "우리 실험은 히로시마 만에서 채취한 히로시마 유리 94개를 분석한 결과"가고 덧붙였다.

연구팀에 따르면 히로시마 유리는 이산화규소와 산화칼슘, 산화마그네슘으로 이뤄진 황장석과 산화알루미늄 함량이 높고 철을 포함한 백립암, 이산화규소와 산화나트륨이 풍부한 소다석회, 거의 이산화규소로 구성된 원폭 형성 물질 등 4종류다.

각 유리에 분포한 이산화규소의 동위원소 조성을 들여다본 연구팀은 원자폭탄 폭발 당시 황장석으로 이뤄진 유리가 먼저 만들어졌고 이후 백립암, 소다석회, 순수 이산화규소 유리가 형성됐다고 파악했다.

광학(C, E, F) 및 전자현미경(A, B, D) 으로 들여다본 다양한 유형의 히로시마 유리 <사진=네이던 에셋>

네이던 에셋 박사는 "이들 물질은 원폭의 균열로 생긴 약 720~3000℃의 화구 내에서 발생한 급격한 응축에 의해 만들어졌을 것"이라며 "이 응축 과정은 원시 태양계의 칼슘-알루미늄 포유물(Calcium–aluminium-rich inclusion, CAIs)의 형성 과정과 흡사하다"고 전했다.

CAIs는 성간 먼지나 가스의 증발에 의해 원시 태양계 원반에서 형성된 고체(알루미늄·칼슘 다량 함유)다. 히로시마 유리가 만들어진 과정이나 구조가 이들과 비슷하다면 당연히 원시 태양계의 탄생 과정이나 진화 역사를 엿볼 수 있을지 모른다.

네이던 에셋 박사는 "실제로 히로시마 유리 내 이산화규소의 동위원소 조성은 CAIs의 조성 범위 내에 있다"며 "이 수수께끼의 유리가 형성된 환경이 CAIs의 그것과 100% 일치하지는 않지만 태양계의 기원과 이후 물질의 형성 과정을 엿볼 귀중한 자료임은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정이안 기자 anglee@sputnik.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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