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을 부르는 노래 ‘글루미 선데이’를 둘러싼 수수께끼는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 노래를 들은 사람들이 극심한 우울증에 빠져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글루미 선데이’는 발표한 지 9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들어서는 안되는 곡’으로 꼽힌다. 과연 이 노래에는 어떤 기막힌 사연이 있는 걸까.

■‘자살 송가’ 글루미 선데이

극단적 선택을 부르는 것으로 유명한 노래 '글루미 선데이' <사진=Pixabay>

‘글루미 선데이(Gloomy Sunday)’에 ‘자살 송가’라는 섬뜩한 별칭이 붙은 때는 1936년 2월이다. 헝가리 부다페스트 경찰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구둣방 주인 조셉 켈러의 사인을 조사하던 중 유서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경찰이 발견한 유서에는 노래 구절이 적혀 있었다. 극단적 선택을 한 사람이 유서에 노래를 인용하는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지만 켈러의 경우는 달랐다. 바로 ‘글루미 선데이’의 구절이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경찰은 꼬리를 물듯 자살한 17명이 모두 이 노래와 관련돼 있다는 사실 때문에 가뜩이나 예민했다.

부다페스트 일대에서 일어난 기묘한 연쇄자살의 진상은 이랬다. 술집에서 밴드가 ‘글루미 선데이’를 연주하자 돌연 남자 두 명이 그 자리에서 권총으로 목숨을 끊었다. 술을 마시던 노신사는 밴드에게 ‘글루미 선데이’를 연주해 달라고 부탁한 뒤 홀연히 밖으로 나와 권총으로 자신의 머리를 쐈다. 한 소녀는 ‘글루미 선데이’의 음반을 꼭 끌어안은 채 도나우 강에 몸을 던졌다.

우연의 일치라고 여기던 경찰은 켈러의 유서를 발견하고 나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했다. 명확한 이유는 밝혀내지 못했지만 끊이지 않는 자살이 ‘글루미 선데이’와 관련돼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얼마 안 가 경찰당국은 ‘글루미 선데이’의 음반 판매와 연주를 전면 금지했다. 당연히 사람들은 의문을 가졌다. 왜 경찰이 특정한 노래를 듣지도, 연주하지도 못하게 하는 걸까. 곧 여기저기서 반발이 일어났다.

유감스럽게도 자살은 멈추지 않았다. 헝가리에서 금지곡이 된 ‘글루미 선데이’는 이미 외국으로 진출한 뒤였다. 노래가 팔려나간 그곳에서도 기묘한 자살은 꼬리를 물었다.

독일 베를린에서는 젊은 여성이 목을 매 숨졌다. 발밑에는 ‘글루미 선데이’ 음반이 놓여 있었다. 미국 뉴욕에서는 여성이 돌연 가스를 마시고 자살했다. 유서에는 “장례식 때 ‘글루미 선데이’를 틀어 달라”고 적혀 있었다.

이탈리아 로마에서는 소년이 자동차를 몰고 가다 강에 뛰어드는 사고가 발생했다. 소년은 부랑자 앞에서 차를 멈춘 뒤 주머니에 있는 돈을 모두 꺼내 건넸다. 소년은 직후 부근의 강에 투신했다. 경찰은 부랑자가 ‘글루미 선데이’를 부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나중에 밝혀냈다.

세계 각지에서 ‘글루미 선데이’를 들은 사람들이 목숨을 끊으면서 이 노래에는 ‘자살 송가’라는 별칭이 붙었다. 상황이 이쯤 되자 각국의 라디오 방송국들은 쉽게 이 노래를 틀지 못했다. 영국 BBC가 가장 먼저 방송을 금지했다. 미국 각지의 라디오 방송국도 뒤따라 ‘글루미 선데이’를 금지곡으로 지정했다.

프랑스의 한 라디오 방송국은 심리학자를 동원해 ‘글루미 선데이’가 정신적으로 미치는 영향을 검증하려 했다. 하지만 원인은 끝내 밝혀지지 않았고, 되레 자살자만 늘었다. 이때 ‘글루미 선데이’로 인해 자살한 사람들의 수가 공식적으로 100명을 넘어섰다.

레죄 세레스 <사진=유튜브 히스토리채널 공식 계정 영상 캡처>

■글루미 선데이, 악마의 속삭임인가?
‘글루미 선데이’는 1933년 헝가리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 레죄 세레스가 실연을 소재 삼아 작곡했다. 노랫말은 야보르 라슬로가 썼다. 원제는 ‘Szomorú vasárnap(Sombre Dimanche)’로, 영어와 같이 ‘우울한 일요일’이란 뜻을 갖고 있다.

세레스는 연인을 떠나보낸 뒤 겪은 아픔을 지극히 사적으로 그린 이 곡을 세상에 발표할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3년 뒤 생각이 바뀐 그는 ‘글루미 선데이’를 정식으로 발표했다. 의외로 곡은 크게 히트했고 용기를 낸 세레스는 자신을 떠난 연인에게 연락을 취했다.

비극은 여기서 시작됐다. 연락을 받은 연인은 다음날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음독자살한 그는 손에 유서를 쥐고 있었는데, 거기에는 ‘우울한 일요일’이라는 문구가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

당시 평론가들은 ‘글루미 선데이’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곡을 듣자면 슬픔 이상의 것이 느껴진다. 무엇인가 듣는 사람들을 깊은 절망 속에 가두는 강한 힘을 가졌다. 이 곡은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일말의 희망도 가질 수 없게 만든다.”

곡이 유명해지자 세레스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음악적으로 성공했지만 마음속 아픔은 깊어만 갔다. 절망으로 가득한 심정을 곡에 전부 쏟아 부었다. 이 곡을 접하면 내 절규를 그대로 듣게 된다. 강한 슬픔이 듣는 사람의 심장을 파고드는 것은 그 때문이다.”

‘글루미 선데이’로 인한 대규모 연쇄자살사건은 한때 뜸해졌다. 소동은 금세 잊혀졌다. BBC는 ‘글루미 선데이’를 노랫말 없이 연주곡으로 다시 방송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기이한 사건은 또 일어났다. 런던 시내의 한 아파트 방에서 똑같은 음악이 계속 흘러나온다는 신고가 들어온 것이다. 출동한 경찰이 문을 부수고 들어가자 여성의 시신이 방 한가운데에 누워있었다. 여성의 옆에 놓인 축음기에서는 ‘글루미 선데이’가 반복해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결국 BBC는 다시 ‘글루미 선데이’ 방송을 금지했고, 이 조치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목숨을 건 리메이크?
시간이 흐르면서 ‘글루미 선데이’와 자살의 연관성은 점차 희미해졌다. 가수와 작곡가 사이에서는 이 곡을 리메이크하는 바람이 불었다.

아직까지 이 곡을 리메이크한 가수 중에 자살한 사람은 없다. 시간이 더 흐르자 사람들은 ‘글루미 선데이’와 자살의 연관성을 부정하기 시작했다. 일부에서는 “한낱 ‘도시괴담’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도 나왔다.

한 전문가는 ‘글루미 선데이’가 탄생할 당시 우울했던 시대적 배경이 자살충동을 느끼게 했다고 주장한다. 1930년대는 세계적으로 불황이 몰아닥쳤고 정치적 상황도 불안했다. 제2차 세계대전도 1939년 발발했다.

사람들 사이에서 잔뜩 가라앉았던 1930년대 시대상을 대표하는 곡이 된 ‘글루미 선데이’. 하지만 곡을 만든 세레스가 1960년대 말 자살로 생을 마감하면서 이 곡은 다시 주목 받았다.

당시 신문은 세레스의 죽음을 이렇게 전했다.

[1968년 1월 13일 부다페스트] 헝가리 작곡가 레죄 세레스가 자살했다. 경찰에 따르면 세레스는 69세 생일로부터 불과 1주일 지난 1월 12일 아파트 창문을 깨고 뛰어내려 사망했다. 그는 1930년대 ‘글루미 선데이’를 작곡했으며, 당시 이 곡 탓에 수많은 사람이 자살했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여담이지만 ‘글루미 선데이’에는 “모든 것을 끝내기로 결심했다” “기쁘게 떠날 것이다” “내 영혼의 마지막 숨소리” 등 죽음을 직접 언급하는 가사가 가득하다.

<사진=영화 '글루미 선데이' 스틸>

■번안곡과 영화
‘글루미 선데이’는 장르를 불문하고 다양한 가수들이 리메이크했다. 1941년 빌리 홀리데이가 영어로 부른 버전이 가장 유명하다. 레이 찰스(1969년), 사라 맥라클란(1996년), 사라 브라이트만(2000년) 등이 이 노래를 재해석해 불렀다.

1999년 영화도 탄생했다. 제목은 ‘Gloomy Sunday:Ein Lied Von Liebe Und Tod’. 영화는 “당신을 잃어버리느니 절반이라도 가지겠어”라는 명대사를 남겼다.

정이안 기자 anglee@sputnik.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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