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유고래가 다른 개체에 박치기를 하는 극히 드문 현상이 포착됐다. 학계는 대형 해양 포유류가 머리를 도구로 이용하는 구체적인 습성이 확인됐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영국 세인트앤드루스대학교(USA) 해양생물학자 알렉 버슬렘 박사 연구팀은 27일 공식 채널을 통해 수컷 향유고래가 다른 개체에 박치기를 하는 드론 영상을 공개했다. 연구팀은 고래 박치기로 포경선이 침몰한 19세기 기록이 생물학적으로 입증됐다고 강조했다.
향유고래는 이빨을 가진 고래 중 가장 큰 종으로 북극부터 남극까지 전 세계에 분포한다. 성장한 수컷은 몸길이 약 18m, 몸무게 약 50t이고, 암컷은 몸길이 약 12m, 체중 약 15t이다. 덩치 차이가 크지만 거대한 머리가 몸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점은 암수가 같다. 머리에는 부력 조정하고 먹이를 찾기 위한 음파(에콜로케이션)를 증폭·집속하는 지방 조직 뇌유가 자리한다.
알렉 버슬렘 박사는 "향유고래의 머리는 그간 섬세한 음향 센서로 활용된다고 여겨져 왔다"며 "이번 드론 조사로 이 거대한 머리가 다른 개체에 물리적 충격을 주는 도구로 쓰이는 것이 확인됐다"고 말했다.
이어 "드론 영상에 담긴 수컷은 아직 어른이 되지 않은 개체로, 동료에 여러 번 머리를 부딪혔다"며 "상대에 의도적으로 박치기를 하는 행동은 머리를 감각기관으로만 쓰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의사소통이나 접촉 수단으로 활용한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이번 성과가 19세기 전설을 뒷받침하는 귀중한 자료라는 입장이다. 19세기 포경선 선원 사이에서는 거대한 고래가 의도적으로 배를 들이받아 침몰시켰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이는 기록으로도 남았는데, 미국 포경선 에식스호가 1820년 11월 20일 남태평양에서 향유고래 모카 딕에 받혀 가라앉은 사고가 가장 유명하다. 이는 미국 소설가 허멀 멜빌의 장편소설 '모비 딕'의 영감이 됐다.
당시 사람들은 고래가 머리를 무기로 삼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향유고래가 실제로 특정 대상에 머리를 부딪혀 충격을 주는 습성이 있다는 사실이 무려 200년 세월을 넘어 확인된 셈이다.
알렉 버슬렘 박사는 "향유고래의 머리는 내부가 복잡한 조직으로 구분되고 매우 견고해 뇌유는 보호하면서 물리적인 충격을 가할 수 있을 것"이라며 "향유고래가 왜 박치기를 하는지 원인은 모르지만, 몇 가지 흥미로운 사례를 알아냈다"고 전했다.
박사는 "영상에는 어린 수컷들끼리 머리를 부딪히는 장면뿐 아니라, 수컷이 암컷에 박치기를 하는 상황도 담겼다"며 "우리 추측이 맞는다면 향유고래는 수컷끼리 다소 과격한 놀이를 통해 힘 조절을 배우고, 앞으로의 전투와 번식에 대비하는 사회적 훈련을 하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윤서 기자 lys@sputnik.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