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를 갖지 않은 초대질량 블랙홀이 처음으로 관측됐다. 은하와 블랙홀이 함께 성장한다는 그간의 우주 진화 정설이 뒤집힐 가능성에 학계가 주목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연구팀은 매월 발간되는 국제 학술지 Monthly Notices of the Royal Astronomical Society 5월 호에 관측 보고서를 내고 빅뱅 이후 불과 7억 년 시점에 출현한 초대질량 블랙홀 에이벨(Abell) 2744-QSO1, 통칭 QSO1을 소개했다.
태양계가 속한 우리은하를 포함, 은하의 대부분은 중심에 질량이 태양의 수백만에서 수십억 배에 달하는 초대질량 블랙홀이 존재한다고 여겨진다. 이 블랙홀이 각 은하들과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성장한 것이 우주의 역사라고 학자들은 생각했다.
다만 탄생 직후 초기 우주에서 너무나 거대한 블랙홀이 다수 발견되면서 이 학설은 수년간 흔들려 왔다. 은하 속에서 블랙홀이 천천히 성장했다고 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부족해 어떻게 그렇게 크게 자랐는지 설명할 이론이 없었다.
2022년 7월 데뷔한 제임스웹우주망원경은 이 오랜 미스터리에 새로운 단서를 제공했다. 제임스웹우주망원경에 탑재된 적외선 장비들은 우주 공간의 가스나 먼지를 투과하기 쉬워, 허블우주망원경으로는 볼 수 없던 먼 천체를 관측할 수 있다. 멀리 볼수록 과거의 우주를 보게 되기 때문에 초기 우주를 직접 포착할 수 있다.
제임스웹우주망원경은 붉은빛이 도는 작은 점 모양의 천체를 2022년 말까지 수백 개나 발견했다. 2025년 이후 연구에서는 그 70~80%가 초대질량 블랙홀을 가진 천체일 가능성이 제기됐다. 이번에 분석된 QSO1 역시 빨간 점 중 하나다.
조사를 이끈 로베르토 마이올리노 박사는 “QSO1은 빅뱅으로부터 약 7억 년 후 우주에 존재한 천체로, 현재 우주의 나이 138억 년 중 단 5%에 해당하는 시대의 것”이라며 “지름은 약 1300광년인데, 우리은하의 약 10만 광년과 비교하면 매우 작다”고 설명했다.
이어 “QSO1 바로 앞에 위치한 거대한 은하단 에이벨 2744, 별명 판도라 클러스터의 강력한 중력이 이번 관측을 도왔다”며 “중력렌즈 효과로 하나의 QSO1이 A, B, C 세 개 상으로 나뉘어 확대된 상태로 관측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연구팀은 제임스웹우주망원경에 탑재된 근적외선 분광기(NIRSpec)를 사용해 QSO1의 상세한 분석에 착수했다. 블랙홀 주변을 소용돌이치는 수소 가스의 움직임에 주목한 연구팀은 가스의 회전 속도를 중심에서 거리별로 측정했다. 만유인력의 법칙에 따라 중심의 한 점을 공전하는 케플러 운동 패턴이 나타났다. 중심에서 멀어질수록 공전 속도가 떨어지는 이 패턴은 질량이 한 점에 집중될 때만 나타난다. 연구팀은 가스의 속도 데이터와 중력 법칙을 이용해 블랙홀의 질량을 직접 산출했다.
로베르토 박사는 “계산된 질량은 태양의 약 5000만 배이며, QSO1 전체 질량의 3분의 2 이상을 블랙홀 하나가 차지하는 사실이 밝혀졌다”며 “QSO1은 은하를 거의 가지지 않은 채 단독으로 존재하는 초대질량 블랙홀임이 질량과 화학 조성 양면에서 뒷받침됐다”고 전했다.
박사는 “은하라는 큰 그릇 안에 블랙홀은 아주 작은 비율로 들어가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QSO1은 그 비율이 역전됐다”며 “천체 전체가 거의 수소와 헬륨으로만 구성되고, 일반 은하에서 볼 수 있는 산소나 탄소 같은 무거운 원소는 거의 존재하지 않은 점도 특이하다”고 언급했다.
무거운 원소는 별이 핵융합을 반복하며 죽는 과정에서 우주 공간에 흩어진다. QSO1에 그것이 거의 없다는 것은 별의 활동이 거의 일어나지 않고 있음을 의미한다. 여러 요소를 검토한 연구팀은 은하보다 블랙홀이 먼저 탄생했을 가능성, 즉 원시 블랙홀 가설을 떠올렸다. 원시 블랙홀은 빅뱅 직후 초고밀도 상태에서 별의 탄생과 무관하게 직접 태어났다고 여겨지는 가설상의 블랙홀이다.
연구팀은 블랙홀의 직접 붕괴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다. 초기 우주의 거대한 가스 구름이 별을 만드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 그대로 블랙홀로 붕괴했다는 의미다. 이는 원시 블랙홀 가설과 마찬가지로 이론으로만 가능하며, 지금까지 관측된 증거는 없다.
학계는 QSO1과 같은 작은 붉은 점을 더욱 면밀히 분석하면 초대질량 블랙홀이 은하보다 먼저 존재하는 특이한 상황이 더 확인될 것으로 예상했다.
정이안 기자 anglee@sputnik.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