잎과 줄기를 갉아먹는 애벌레가 접근하면 벌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강낭콩의 방어 시스템이 구체적으로 규명됐다. 식물이 SOS 신호를 보내는 메커니즘을 분자 수준에서 알아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미국 워싱턴대학교 연구팀은 지난달 27일 자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에 낸 관찰조사 보고서에서 강낭콩이 위험을 감지하고 말벌을 불러들이는 화학신호를 특정했다고 전했다.
쌍떡잎식물 콩과 한해살이 식물 강낭콩은 애벌레가 잎을 갉아먹으려 접근하면 벌에 SOS 신호를 보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강낭콩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벌에 구조를 요청하는지 학자들은 자세히 알지 못했다.
워싱턴대 생물학자 애덤 스타인브레너 교수는 “다리가 없는 식물은 곤란할 때 스스로 도망치지 못한다”며 “독이라도 가지고 있으면 반격이 가능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유충이 잎을 갉아먹어도 그저 견디는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벌을 끌어들이는 강낭콩의 SOS 신호는 화학물질이었다”며 “잎이나 줄기 표면의 인셉틴 수용체가 애벌레의 침 성분을 감지하는 순간, 벌을 유인하는 화학물질 방출이 시작됐다”고 덧붙였다.
강낭콩의 방어 메커니즘을 규명하기 위한 실험은 옥수수와 콩 재배가 활발한 멕시코 남부 오아하카주 콩밭에서 진행됐다. 인셉틴 수용체를 가진 강낭콩과 수용체를 만드는 유전자를 일부러 뺀 강낭콩을 한 쌍으로 나란히 키운 연구팀은 애벌레의 침을 바른 잎, 순수한 인셉틴 성분만 분무한 잎, 면도기로 상처를 내고 물을 바른 잎을 준비했다.
처리 후 연구팀은 해충으로 알려진 열대거세미나방 유충에 각 잎을 노출한 뒤, 말벌아과 벌 두 종이 어느 잎에 많이 몰리는지 조사했다. 각 말벌류는 중남미 원산으로, 애벌레 등 곤충을 사냥해 유충의 먹이로 삼는 포식성을 가졌다.
휘발성 물질을 감지한 말벌은 애벌레가 있다는 신호를 인식하고 강낭콩 쪽으로 날아들었다. 긴 진화의 역사 속에서 말벌류는 이 특유의 냄새와 먹이활동 기회를 연결 짓도록 학습했다고 연구팀은 추측했다.
타액 처리와 인셉틴 처리 어느 쪽 조건에서도 인셉틴 수용체를 가지지 않은 잎에 모이는 말벌의 수는 수용체를 가진 잎에 비해 무려 40% 적었다. 면도기로 상처를 낸 조건에서는 인셉틴 수용체 유무에 따른 차이는 거의 없었다. 실내 실험에서도 같은 경향이 확인됐다.
애덤 스타인브레너 교수는 “인셉틴 수용체를 가지지 않은 식물은 벌을 끌어당기는 휘발성 물질을 거의 방출하지 않았다”며 “수용체가 정상적으로 기능하는 식물만이 애벌레의 침이나 순수한 인셉틴 성분에 닿았을 때 벌을 끌어당기는 휘발성 물질을 뿜어냈다”고 말했다.
교수는 “이번 연구 성과를 농업에 활용할 가능성은 얼마든 있다”며 “식물이 본래 가지고 있는 방어 능력을 농업에 활용하면 농약 의존도를 낮추면서 해충 피해는 효과적으로 억제할 방법을 찾을지 모른다”고 기대했다.
이윤서 기자 lys@sputnik.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