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넘게 이어지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으로 야생동물들의 야간 활동이 크게 감소한 것으로 파악됐다. 전쟁이 야생동물의 행동을 바꾼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입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독일과 노르웨이 공동 연구팀은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18일 자에 이런 내용을 담은 관찰조사 보고서를 게재했다. 연구팀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 전후인 2021년부터 2022년 사이 체르노빌 야생동물 보호구역에 설치한 자동 촬영 카메라가 담은 영상을 분석했다.

체르노빌은 널리 알려진 원자력발전소 폭발 사고가 난 곳이다. 1986년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서 북쪽으로 약 90㎞에 위치한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가 폭발하면서 주변 약 2600㎢ 지역은 출입 금지구역으로 지정돼 인간의 거주와 자유로운 출입이 40년째 불가능하다.

사람이 벌인 전쟁 때문에 야생동물의 행동에 뚜렷한 변화가 감지됐다. <사진=pixabay>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이 사라진 이 땅에 다양한 야생동물들이 서식하면서 생물다양성이 풍부해졌다. 사고가 있은 지 정확히 30년이 된 2016년, 야생동물 보호구역으로 지정되면서 멸종 위기종인 유럽들소, 현존하는 유일한 야생 말인 프르제발스키말(몽골야생말)도 보호 목적으로 이곳에 도입됐을 만큼 자연이 재건됐다.

다만 러시아의 군사 침공이 야생동물의 천국을 전쟁터로 바꿨다. 2022년 2월 24일 우크라이나를 공격한 러시아군은 체르노빌 출입 금지 구역에 침입했다. 같은 해 4월 1일까지 36일간 점령이 지속되는 가운데, 군 차량 행렬이 뒤섞이며 포격과 공습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40년 가까이 야생동물의 낙원이던 곳이 갑자기 전쟁터로 변했다.

체르노빌 야생동물 보호구역의 확대도 <사진=프라이부르크대학교 공식 홈페이지·사이언스>

이 즈음에 설치된 관찰카메라들은 동물의 분명한 행동 변화를 감지했다. 전투가 격렬해지면서 붉은사슴, 유럽노루, 여우 등 여러 포유류의 야간 활동 시간이 크게 감소했다.

독일 프라이부르크대학교 스비틀라나 쿠드렌코 박사는 "러시아 침공 이전에 설치한 자동 촬영 카메라 31대의 영상을 우크라이나군이 지뢰를 제거한 덕에 회수했고, 2021년 같은 기간의 영상과 비교 분석했다"며 "여우, 붉은사슴, 유럽노루, 멧돼지 등 포유류 11종을 분석한 결과 야간 활동이 대부분 줄어들었다"고 설명했다.

2021년부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진 2022년 사이 체르노빌 야생동물 보호구역의 붉은여우 행동 변화를 보여주는 표. 야간활동이 급감했다. <사진=프라이부르크대학교 공식 홈페이지·사이언스>

이어 "포격과 폭격, 차량 이동음 등 동물들이 경험하지 못한 강렬한 자극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지속되면서, 언제 움직여야 할지 판단이 어려워진 것"이라며 "이번 관찰 데이터는 2022년의 것으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2026년 현재도 계속되고 있어 야생동물들의 변화는 더 심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연구팀은 인간의 활동이 생물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전쟁에만 국한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도로 건설, 농지 확대, 도시화 등 인간이 환경을 바꿀 때마다 야생동물은 그 영향을 받는다고 연구팀은 지적했다. 스비틀라나 박사는 "이번 연구는 그 보편적인 사실을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이 다시 한 번 입증했음을 보여줬다"고 자평했다.

이윤서 기자 lys@sputnik.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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