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밀 분석 끝에 신종으로 최종 확인
고생물학자들이 30년 넘게 대왕등각류로 분류한 심해 생물 표본이 학계에 보고되지 않은 신종으로 뒤늦게 밝혀졌다. 오랫동안 교육 자료로 사용되고 박물관 특별전에도 전시됐지만, 누구도 정체을 알아채지 못했다.
독일 튀빙겐대학교 연구팀은 8일 국제 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조사 보고서를 내고 신종 생물 바티노무스 튀빙고보리켄시스(Bathynomus tuebingoborikensis)의 면면을 소개했다.
바티노무스 튀빙고보리켄시스의 표본은 1980년대 후반 튀빙겐대 고생물학자 돌프 자일라허 교수가 푸에르토리코의 해양연구시설에서 확보했다. 수심 약 500m에 설치된 망에 걸린 개체로, 몸길이는 약 32.2㎝다.
당시에는 채집 해역이 기존 대왕등각류인 바티노무스 기간테우스(Bathynomus giganteus)의 서식 범위와 겹친다는 이유로 같은 종으로 분류됐다. 이후 건조 표본으로 보존돼 대학의 교육·연구 자료로 활용됐다. 2019~2020년 독일 슈투트가르트 주립자연사박물관의 해양 거대생물 특별전에서는 주요 전시물로 소개됐다.
반전은 최근 표본을 재조사하는 과정에서 벌어졌다. 연구팀은 마이크로 CT 등으로 표본을 비파괴 분석하고 입 주변 구조와 꼬리 끝의 가시, 다리의 미세한 형태를 기존 종들과 비교했다. 일곱 번째 다리에서 굵고 굽은 털 15개가 빗살처럼 배열된 독특한 구조 등을 종합한 결과, 이 표본은 바티노무스속에 속하지만 별개의 종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새 학명에는 대학이 위치한 독일 튀빙겐과 푸에르토리코 원주민 타이노족이 섬을 부르던 이름 보리켄이 반영됐다. 연구팀은 이번 조사에서 대형 등각류의 크기 구분도 새롭게 제안했다. 기존에는 몸길이 15㎝를 기준으로 거대형과 초거대형을 구분했지만, 이번에는 25.5㎝ 이상의 개체를 별도로 묶는 콜로소자이언트(colossogiant) 범주를 도입했다. 새로 확인된 표본 역시 여기에 해당한다.
흥미롭게도 이 신종과 가장 가까운 친척은 일본의 수족관에서 발견됐다. 카나가와현 신에노시마수족관이 보관하던 표본 역시 대왕등각류로 알려졌지만, 2022년 별개의 신종 바티노무스 유카타넨시스(Bathynomus yucatanensis)로 확인됐다. 이 개체는 2017년 멕시코 유카탄반도 인근에서 채집된 것으로, 몸길이는 25.7㎝다.
연구팀의 계통분석에서는 바티노무스속의 진화사가 1500만 년 이상 전까지 거슬러 올라갈 가능성도 떠올랐다. 당시 카리브해 주변에서 나타난 조상 집단이 해양 환경의 변화에 따라 다른 지역으로 퍼져 나갔다는 가설이다. 다만 이는 현생 종들의 형태적 관계를 토대로 추정한 진화 경로다.
박지연 기자 yeon@sputnik.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