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수록 빠르게 사라지는 DNA 보호장치
894마리 분석에서 노화 속도 차이 확인

골든 리트리버나 그레이트데인 같은 대형견은 치와와나 포메라니안 같은 소형견보다 대체로 수명이 짧다. 몸집이 큰 동물이 오래 사는 일반적인 포유류의 경향과 정반대다. 반려견의 이런 수명 차이를 설명할 새로운 단서가 유전자에서 발견됐다.

미국 애리조나주립대학교 노아 스나이더-매클러 교수 등이 참여한 연구팀은 개의 몸집에 따라 노화 속도가 달라지는 현상이 DNA 속 점핑 유전자를 억제하는 기능과 관련됐다고 16일 밝혔다. 이번 성과는 지난 8일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를 통해 먼저 소개됐다.

연구팀은 미국의 반려견 노화 추적 사업인 도그 에이징 프로젝트(Dog Aging Project)에 등록된 개 894마리에서 확보한 DNA 메틸화 자료 1640건을 분석했다. DNA 메틸화는 유전정보 자체를 바꾸지 않으면서 유전자의 활동을 조절하는 화학적 장치다. 나이가 들면서 변화하기 때문에 생물학적 노화를 파악하는 지표로도 활용된다.

조사 결과, 개는 나이가 들수록 DNA 메틸화가 감소했으며 특히 점핑 유전자로 불리는 전이인자 영역에서 변화가 두드러졌다. 점핑 유전자는 DNA 내부에서 자신의 위치를 옮기거나 복제본을 다른 위치에 삽입할 수 있는 유전정보다.

다양한 품종과 체구를 가진 반려견 894마리로부터 확보한 DNA 메틸화 자료 1640건을 분석한 결과, 몸집이 크고 수명이 짧은 개일수록 후성유전학적 노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사이언스>

대표적인 점핑 유전자 LINE1은 활동 과정에서 DNA를 손상하거나 유전체를 불안정하게 만들 수 있다. 평소에는 DNA 메틸화가 LINE1의 활동을 억제하지만, 노화로 메틸화가 감소하면 통제 기능이 약해질 수 있다.

노아 스나이더-매클러 교수는 “이번 연구에서는 LINE1 관련 영역의 40% 이상에서 노화에 따른 메틸화 감소가 관찰됐다”며 “특히 초대형견은 소형견보다 LINE1 관련 메틸화가 감소하는 속도가 연간 평균 약 35% 빨랐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번 결과가 개의 몸집과 수명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는 가장 명확한 분자 수준의 단서 중 하나”라며 “대형견의 빠른 노화는 점핑 유전자에 대한 통제력 약화와 관련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대형견의 수명이 대체로 짧다는 사실은 선행연구에서도 확인됐다. 독일 괴팅겐대학교 코르넬리아 크라우스 교수 등이 참여한 연구팀이 2013년 학술지 아메리칸 내추럴리스트에 발표한 실험 보고서가 대표적이다.

인기 대형견 중 하나인 래브라도 리트리버 <사진=pixabay>

개 74개 품종의 사망 자료를 분석한 연구팀은 대형견이 소형견보다 일찍 죽는 주된 이유가 노화가 시작되는 시점보다 노화가 진행되는 속도에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노화 시작 시점은 대형견이나 소형견이나 차이가 없지만 몸집이 큰 개일수록 노화 속도가 빠르다는 이야기다.

질병 발생률에서도 차이가 나타났다. 2022년 도그 에이징 프로젝트에 등록된 반려견 2만7541마리의 자료를 분석한 선행연구에서 대형견의 악성 종양 경험 비율은 초소형견과 소형견보다 약 3.67배 높았다.

노아 스나이더-매클러 교수는 “점핑 유전자를 억제하는 기능이 인간을 비롯한 다른 포유류의 노화에도 관여할 가능성이 있다”며 “개는 인간과 생활환경을 공유하면서도 상대적으로 수명이 짧아 노화 연구에 중요한 동물”이라고 전했다.

교수는 “이번 연구가 LINE1의 활동 증가 자체를 직접 측정해 수명 단축의 원인으로 확정한 것은 아니다”며 “점핑 유전자의 조절 기능이 노화에 미치는 영향을 추가로 규명하기 위해 실험을 진행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대형견이나 소형견이나 노화의 시점은 비슷하지만 속도가 크게 차이가 나는 것으로 확인됐다. <사진=pixabay>

대형견의 짧은 수명과 관련해서는 인슐린 유사 성장 인자 1(IGF-1)이 주목을 받았다. 개의 몸집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IGF-1은 성장과 세포 증식에도 관여하기 때문이다. 동물실험에서는 IGF-1 신호를 억제하면 수명이 늘어나는 현상이 확인돼 대형견의 빠른 노화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돼 왔다.

이번 연구는 성장에 관여하는 IGF-1과 달리, 노화 과정에서 점핑 유전자를 억제하는 기능이 얼마나 빠르게 약해지는지 주목했다. 두 연구는 서로 다른 측면에서 대형견의 짧은 수명을 설명할 단서를 제공한다.

대형견의 짧은 수명은 반려견주들도 익히 아는 사실이다. 국내에서도 친숙한 대표적인 대형견으로는 골든 리트리버, 래브라도 리트리버, 저먼 셰퍼드, 시베리안 허스키, 알래스칸 말라뮤트 등이 있다. 그레이트데인과 세인트버나드, 잉글리시 마스티프처럼 몸집이 훨씬 큰 초대형견도 이번 연구가 주목한 수명 차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품종이다.

김한별 기자 khstar@sputnik.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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