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9년 호주 집단학살, 현대 심리학으로 분석
권력 장악·반대파 제거...사이코패스 특성 확인

[편집자주]어떤 현상의 진상이 밝혀지면 과학, 그렇지 않으면 미스터리입니다. 거리가 멀 것 같은 과학과 미스터리가 실은 종이 한 장 차이로 상존하는 셈인데요. 스푸트니크가 발굴한 기묘한 미스터리와 아직 과학이 풀지 못한 기현상을 'SM(Sputnik Mystery)' 코너에서 다룹니다.

400년 전 난파선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을 이끌며 100명 넘게 학살하도록 지시한 남성이 세계 최초의 기업 사이코패스일 가능성이 제기됐다. 당시 생존자들의 기록과 현대 심리학의 평가 기준을 대조한 결과, 오늘날 기업에서 발견되는 사이코패스형 지도자의 특징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흥미로운 주장은 영국 앵글리아러스킨대학교 클라이브 보디 부교수가 제기했다. 그는 학술지 아시안 저널 오브 비즈니스 에식스 9월 호에 조사 보고서를 내고 17세기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직원 예로니무스 코르넬리스가 최초의 코퍼릿 사이코패스, 즉 기업 사이코패스라고 지적했다.

1629년 호주 서부 아브롤류스 제도에서 암초를 만난 바타비아호 <사진=인공지능(챗GPT) 생성 이미지>

사건은 1629년 6월 4일 발생했다. 네덜란드에서 출발해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로 향하던 동인도회사의 대형 상선 바타비아호가 호주 서부 아브롤류스 제도 인근에서 좌초했다. 배에 탑승했던 선원과 승객 300여 명은 인근 무인도로 피신했다.

선단 지휘관과 선장이 구조를 요청하러 떠나면서 섬에 남은 사람들의 지휘권은 동인도회사 상급 직원이던 코르넬리스에게 넘어갔다. 그는 이미 항해 도중 선박의 재물을 빼돌리기 위해 선상반란을 계획한 터였다.

권력을 잡은 코르넬리스는 먼저 사람들의 의사결정기구를 자신의 추종자들로 채웠다. 이어 반대할 가능성이 있는 이들을 식수를 찾는다는 명목으로 다른 섬에 보내 고립시켰다. 식량과 물자를 독점한 그는 생존자 수를 줄여야 한다며 부하들에게 살인을 명령했다.

선상반란을 계획했던 코르넬리스는 반대파를 고립시키고 끔찍한 학살을 자행했다. <사진=인공지능(챗GPT) 생성 이미지>

학살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다. 코르넬리스는 직접 살인에 가담하기보다 추종자들에게 범행을 지시했고, 새로 합류한 사람들에게도 살인을 강요했다. 모두를 공범으로 만들어 배신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수개월 동안 이어진 학살로 1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클라이브 보디 부교수는 코르넬리스의 행동을 기업 사이코패스 평가 기준 10개 항목과 비교했다. 그 결과 타인을 조종하는 능력, 권력에 대한 집착, 반대파 제거, 공포를 이용한 통제 등 10개 항목 모두에서 사이코패스형 지도자의 특성이 확인됐다.

흥미로운 점은 같은 난파 사고에서 전혀 다른 지도자가 등장했다는 사실이다. 코르넬리스에게 버림받은 병사들을 이끈 비버 하예스는 다른 섬에서 식수와 식량을 확보하고 생존자들을 보호했다. 그는 코르넬리스 일당의 공격을 여러 차례 막아냈으며, 결국 코르넬리스를 붙잡는 데 성공했다.

코르넬리스의 만행은 생존자를 보호한 비버 하예스의 활약과 구조대의 진입으로 막을 내렸다. <사진=인공지능(챗GPT) 생성 이미지>

1629년 9월 구조선이 도착하면서 학살은 막을 내렸다. 코르넬리스와 주요 공범들은 재판을 거쳐 처형됐다. 사건 현장인 비컨섬에서는 현대 고고학 조사 과정에서 수많은 희생자들의 유골이 발견됐다. 바타비아호 난파 유적은 2006년 호주 국가유산으로 지정됐다.

클라이브 보디 부교수는 “코르넬리스는 오늘날 유해한 직장 환경에서 발견되는 권력 남용과 지배 전략을 그대로 사용했다”며 “반대파를 제거하고 충성파에 특혜를 주며 공포를 조성하는 행동은 현대 기업의 사이코패스형 지도자에게서도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이어 “같은 재난을 겪고도 생존자들을 지켜낸 비버 하예스의 사례는 코르넬리스와 정반대”라며 “바타비아호 사건은 지도자의 인격과 윤리관이 조직의 운명을 얼마나 크게 바꿀 수 있는지 보여줬다”고 강조했다.

박지연 기자 yeon@sputnik.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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