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 년 전 약재 등 24점 성분 분석
만병통치약 중세 유럽 속설 입증돼

고대 이집트 미라를 갈아 만든 약에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감염된 세포를 보호하는 효과가 확인됐다. 중세 유럽인들이 만병통치약으로 여겨졌던 미라 가루가 실제로 효능을 발휘한다는 사실이 현대 과학으로 확인됐다.

독일 마르부르크대학교 팀 베르거 박사 연구팀은 이런 내용을 담은 조사 보고서를 지난달 26일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냈다. 이번 조사에는 유럽의 대학교와 박물관에 보관된 미라 약재와 미라의 신체 일부, 붕대, 두개골 등 24점이 동원됐다.

중세부터 근세까지 유럽에서는 고대 이집트 미라를 분쇄한 가루를 두통과 기침, 어지럼증 등에 사용하는 풍습이 있었다. 라틴어로 '진짜 이집트 미라'라는 뜻의 '무미아 베라 아이깁티아카(Mumia vera aegyptiaca)'로 불린 이 약재는 수요가 늘면서 가짜 제품까지 유통됐다.

중세 유럽인들은 고대 이집트 미라를 빻은 분말을 약처럼 유통했다. <사진=인공지능(챗GPT) 생성 이미지>

미라 약재는 일본에도 전해졌다. 에도시대 나가사키를 통한 네덜란드 무역으로 수입됐다. 1743년 8대 쇼군 도쿠가와 요시무네가 미라를 주문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연구팀은 역사적 약재에서 추출한 물질을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감염된 개의 신장 유래 배양 세포에 투여했다. 그 결과 특정 추출물에서 바이러스로 인한 세포 손상을 줄이는 보호 효과가 관찰됐다.

물론 이 결과가 미라 가루의 독감 치료 효과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연구팀이 확인한 것은 배양 세포에서 나타난 반응이며, 보호 효과를 일으킨 정확한 물질과 작용 원리도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고대 이집트 미라를 안치한 석관 <사진=pixabay>

화학 분석에서는 고대 이집트의 미라 방부 처리에 사용된 침엽수 수지의 흔적이 다수 파악됐다. 특히 7-옥소데히드로아비에트산이라는 물질이 검출됐지만, 이 성분만으로는 세포 보호 효과를 재현하지 못했다.

또한 약 2700년 전 미라의 두개골과 18세기 미라 약재에서는 알로에와 관련된 화학 성분이 검출됐다. 고대 이집트의 방부 처리에 알로에가 사용됐을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분자 수준의 증거로 주목할 만하다.

학계는 이번 발견이 고대 방부 처리 기술과 역사적 의약품의 성분을 이해하는 새로운 단서가 된다고 평가했다. 팀 베르거 박사는 "오랫동안 미신과 민간요법의 영역에 머물렀던 미라 약재가 실제 약효를 발휘했을 가능성을 잡아낸 점에 의미가 있다"고 전했다.

박지연 기자 yeon@sputnik.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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