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또 다시 종말론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다. 마야인들의 달력을 보니 올해야말로 지구가 끝장날 해라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학자들은 당초 2012년 인류멸망을 예측했지만, 실은 올해가 진정한 지구 최후의 해라고 말을 바꿨다. 마야인 달력을 연구하다 보니 빼먹은 게 있었다는 설명이 붙었지만, 이게 또 맞을 지는 의문이다.  

아마 정해진 때가 지나도 인류는 그대로 살아있을 가능성이 크다. 종말론이 원래 관심은 엄청나지만 실상을 믿는 사람은 따로 있다. 실제로 숱한 종말론이 이전부터 제기됐지만 지구는 여전히 돌고 인류는 그 위에서 살아가고 있다. 다만 그 빗나간 종말론들 중엔 실로 기묘해 여전히 회자되는 것들도 있다.

■"홍수로 인류 멸망"...우주인 메시지 주장한 가정부
1954년 미국 시카고에 살던 도로시 마틴이라는 가정부는 사난다(Sananda)라는 우주인으로부터 인류 멸망에 관한 메시지를 받았다고 털어놨다. 

사난다에 따르면, 인류는 1954년 12월 21일 대홍수로 최후를 맞게 된다. 목숨을 건질 유일한 방법은 산꼭대기에 제단을 만들고, 우주인들이 비행선을 타고 와 구조해주길 기다리는 거였다. 

이 가정부의 말은 의외로 널리 퍼졌고 추종자도 금세 불어났다. 사람들은 하던 일을 때려치우고 학교도 그만둔 뒤 가족과 연인마저 버리고 제단을 쌓았다. 해당 날짜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자 도로시 마틴은 공갈과 사기 혐의로 피소됐고 시카고를 등지고 말았다. 1992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도로시는 우주인의 메시지는 정말이라고 수도 없이 읊조렸다. 

■네 번째 붉은 달이 뜰 때, 세상은 몰락하리라

존 하지 목사가 2013년 출간한 책 '네 개의 붉은 달(Four blood moons)' <사진=아마존>

미국의 목사 존 하지(80)는 2015년 9월, '최후의 테트라드(tetrad, 네 번 연속되는 개기일식)'가 일어난 뒤 신의 계시대로 세계가 종말을 맞으리라 내다봤다. 목사는 2013년 베스트셀러가 된 '네 개의 붉은 달(Four blood moons)'에서 "2014년 4월부터 2015년 10월 사이 테트라드가 일어난 뒤 인류는 사라질 것"이라고 언급했다.

하지 목사가 예언한 붉은 달 개기일식은 2014년 4월 14일 처음 관측됐다. 이후 2014년 10월 8일과 2015년 4월 4일 똑같이 붉은 달이 떴다. 세계를 끝장낼 마지막 붉은 달이 관찰된 건 2015년 9월 27일이었다. 물론, 세상은 멀쩡했다. 

당시 붉은 달 이야기는 교회 목사가 언급한 사실과 성서 속 내용을 인용한 점이 크게 논란이 됐다. 붉은 달 이야기는 구약성서의 요엘서 2장 30~31절에 등장한다. 내용은 아래와 같다.

"내가 이적을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이라. 야훼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 같이 변하려니와."

신도들까지 항의하자 존 하지 목사는 "4개의 붉은 달이 하늘에 출현한 뒤 세상이 망한다고 말한 적은 없다"고 물러섰다. 대신 그는 "다만 가까운 미래에 반드시 인류가 망하리라는 생각엔 변함이 없다"고 애매한 말을 남겼다. 

■마야인 달력이 끝나는 날, 인류도 사라진다(2012년 12월21일)

마야문명과 인류멸망을 다룬 영화 '아포칼립토' 중에서 <사진=영화 '아포칼립토' 스틸>

가장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또 신뢰했던 종말론. 당시 언론까지 나서 이슈화해 세계적 유명세를 탔다. 마야문명 연구가들에 따르면 이 세상은 5125년 전 창조됐고, 일주, 즉 한 바퀴가 도는 데 13만일이 걸린다. 서력에서 이야기하는 2012년 12월 21일이 세상의 일주가 되는 때여서 이를 멸망의 날로 꼽았다.

엄청난 화제를 모은 종말론인 만큼 관련 영화나 다큐 등이 2012년 전후해 숱하게 제작됐다. 예언이 허무하게 끝나자 마야달력에 대한 신뢰도는 상당히 낮아졌다. 마야문명 연구가들은 해당 날짜에 단지 마야달력이 끝났을 뿐, 이것이 세계 종말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데 동의해야만 했다. 

■요승 라스푸틴이 점친 인류멸망
러시아 정보기관 KGB는 2013년 8월 23일, 희대의 요승 그리고리 라스푸틴에 관한 비밀문서를 공개했다. 라스푸틴은 제정러시아 말기의 수도사이자 심령술사로 황제 니콜라이 2세의 신임을 얻어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KGB가 까발린 비밀문서에는 세계멸망에 대한 라스푸틴의 갖가지 예언이 담겼다. 우선 라스푸틴은 2001년 유럽 물리학자가 죽은 자를 되살리는 방법을 알아내고, 그 결과 스스로 목숨을 끊는 자가 속출하리라 내다봤다. 

또한 라스푸틴은 미국에 아주 흉악한 바이러스가 창궐하고 엄청난 토네이도가 몰려오는 등 신의 심판이 시작된다고 예언했다. 2006년 여름에는 스코틀랜드 해안에 괴물이 출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게 다가 아니다. 이슬람 원리주의가 2000년대 전후해 대두되고, 비슷한 시기 이스라엘이 미국사회를 집어삼킬 것으로 봤다. 2013년 마침내 인류가 종말을 맞는데, 원인은 '대학살(the great slaughter)'이라고 언급했다. 

비록 대부분의 예언이 빗나갔지만 라스푸틴의 말 중 실제 벌어진 것도 있다. 미국의 정차학자 데이비드 노박에 따르면, 라스푸틴은 1917년 볼셰비키혁명을 정확히 내다봤고 니콜라이2세의 암살 예언도 적중했다. 히틀러의 만행을 일부 맞히는가 하면, 달착륙이나 소비에트연방의 해체 등도 생전 언급했다.

■인류는 '검은 무지개'에 전멸한다(1999년 8월 18일)

팀 버튼 영화 '에드 우드'에 등장하는 어메이징 크리스웰 <사진=영화 '에드 우드' 스틸>

팀 버튼 감독의 1994년 영화 '에드 우드(Ed Wood)'는 할리우드를 맴돌던 실존인물들의 드라마틱한 인생을 엮었다. 여기에 등장하는 크리스웰, 통칭 '어메이징 크리스웰'은 말끔한 턱시도 차림으로 시선을 끈다. 제프리 존스가 연기한 이 캐릭터는 관에서 잠을 자며 자신에게 초능력이 있다고 주장한다. 인기 TV토크쇼에 출연해 매일 이상한 이야기를 떠들지만 사람들은 묘한 설득력에 그를 좋아했다.

특히 크리스웰은 인류 멸망을 여러 차례 점쳤다. 1968년 펴낸 책 '크리스웰이 보는, 2000년까지의 세계'에서는 1999년 8월 18일 세상이 망한다고 예언했다. 이에 대해 그는 "사람들은 갑자기 나타난 시커먼 무지개 때문에 일어난 저산소증에 멸망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놀랍게도 그는 1982년 사망하기 전, 마야문명 연구가들이 점친 2021년 12월 21일 지구최후의 날도 언급했다. 이 미스터리는 아직 풀리지 않고 있다. 참고로 영화 '에드 우드'에서 크리스웰은 1982년 다른 차원으로 이동한 것으로 묘사된다. 

■"휴거는 옵니다"...예언 빗나가자 사과한 목사
미국 목사 해럴드 캠핑은 자신이 소유한 라디오 채널 등을 통해 숱하게 인류종말을 예고했다. 물론 한 번도 들어맞은 적이 없었고, 2013년 목사는 92세로 사망했다. 

캠핑 목사의 예언 중 가장 유명한 것이 휴거(Rapture)다. 2011년 5월 21일 지구가 두 개로 갈라진다고 호언장담했다. 그는 자기 주장을 널리 퍼뜨리기 위해 지지자들과 신자를 동원, 돈을 끌어모았고 5000개 넘는 옥외광고와 차량광고를 진행했다. 

운명의 날,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자 그는 신자들에게 "5개월 정도 오차가 있다"고 둘러댔다. 또 "지구가 두쪽나는 일은 없고, 대신 신이 내려와 사람들을 심판하고 선택된 자가 천국에 오르는 휴거가 도래할 것"이라고 말을 바꿨다. 

이후 10개월이 지나도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자 신자들이 이탈하기 시작했다. 일부는 목사가 사기를 쳤다고 욕을 퍼부었다. 그래도 양심은 있었는지, 캠핑 목사는 인터넷에 글을 올려 "예언이 빗나가고 말았다"고 사과했다. 특히 그는 "당분간 이 세상이 망할 일은 없을 것"이라고 덧붙여 손가락질을 받았다. 

■"인종차별에 따른 전쟁으로 지구는 망한다"

마고 로비가 연기한 샤론 테이트 <사진=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인 할리우드' 스틸>

세계적으로 악명을 떨친 미국의 연쇄살인마 찰스 맨슨이 생전 반복했던 말이다. 1960년대 후반 컬트교단(실은 범죄집단) 맨슨 패밀리의 리더였던 그는 흑인이 지배하는 세상이 오며, 많은 백인이 학살된다고 내다봤다. 교세를 확장하던 그는 1968년 비틀즈가 발표한 '화이트 앨범' 수록곡 '헬터 스켈터(Helter Skelter)'에 영감을 받아 세계멸망을 불러올 전쟁의 이름을 '헬터 스켈터'로 지었다.

찰스 맨슨은 추종자들에게 종말을 피할 방법으로 흑인이 저지를 것처럼 꾸며 살인하라고 명령했다. 맨슨 패밀리의 열성 멤버 찰리 왓슨과 수전 앳킨스, 패트리샤 크렌빈켈, 린다 카사비앙은 그 유명한 로만 폴란스키 감독 일가 살인사건을 저지른다. 이들은 1969년 8월 8일, 할리우드 부촌에 자리한 폴란스키의 저택에 침입, 감독의 아내이자 톱배우 샤론 테이트를 비롯한 5명을 무참히 살해했다. 폴란스키 본인은 런던 출장 중으로 화를 면했지만 만삭의 샤론 테이트를 포함한 지인들은 그야말로 억울하게 죽었다. 음악을 좋아해 음반도 내려던 찰스 맨슨은 자신을 비판한 프로듀서 테리 맬처가 살던 집으로 알고 살수를 보냈으나, 폴란스키가 이사온 사실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샤론 테이트 살인사건으로 경찰에 붙잡힌 찰스 맨슨은 패밀리 3명(린다 카사비앙은 사법거래로 풀려났다)과 함께 사형선고를 받았다. 이후 감형돼 무기징역을 살았으며 2017년 옥중 사망했다.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았는데 2014년 애프턴 일레인 버튼이라는 당시 26세 여성은 그와 옥중결혼식을 올릴 예정이라고 밝혀 세상을 뒤집어놨다. 특히 버튼의 목적이 애정뿐 아니라 찰스 맨슨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한 것으로 드러나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컴퓨터가 세계질서를 무너뜨린다?
1999년에서 2000년으로 넘어가던 때 대유행한 일명 '밀레니엄 멸망설'이다. Y2K 버그로 알려진 일련의 소동은 기존의 PC 캘린더가 연호의 아래 두자리수인 99에서 00으로 변경할 수 없게 돼 PC가 망가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에서 시작됐다.

그 결과 1999년부터 2000년이 되는 순간 1900년 달력이 거꾸로 돌아가 100년치 내부 데이터가 죄다 날아가리라는 공포감이 세계적으로 확산됐다. 마이크로소프트 등 세계적인 기업들은 숱한 해결책을 발표했는데 오히려 이 점이 더 '밀레니엄 멸망설'을 유명하게 했다. 

물론 2000년 1월 1일 세상은 아무 일 없이 새해를 맞았다. 일부 버그는 발견됐지만 세상이 멸망하는 일따위 벌어지지 않았다. 일부에선 "미리 혼란을 예측하고 노력을 기울인 결과"라는 이야기도 나왔다.  

정이안 기자 anglee@sputnik.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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