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균도 전쟁터에서 싸우는 군인처럼 동료에 위험을 알리고 죽는다는 놀라운 연구결과가 나왔다. 지능이 없는 세균이 일종의 비명을 질러 동료에 경고한다는 이 연구결과는 이달 중순 세계적 학술지 네이처에 게재됐다.

미국 텍사스대학교 수빅 바타차리야 박사와 데이빗 M.워커 박사 연구팀은 대장균을 대상으로 한 실험 결과 세균이 사멸할 때 일종의 경고를 무리에 보낸다는 결론을 얻었다. 연구팀은 이를 '네크로시그널(necrosignal)', 즉 '죽음의 신호'라고 이름 붙였다.

연구팀은 세균 수 십억 개체가 모여 무리를 지을 경우 개별 세균과 어떻게 다른 항생제 내성을 보이는 지 실험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세균이 항생제에 사멸하기 전 화학물질을 이용한 '네크로시그널'을 보내 동료들에게 위험을 알리는 사실을 발견했다. 

전자현미경으로 확대한 대장균 <사진=Fixabay>

'네크로시그널'은 항생제를 투여한 대장균 무리의 변화에서 드러났다. 연구팀이 투여한 항생제로 실험에 동원된 대장균 무리들 일부가 사멸했는데, 한 무리가 죽기 시작하면 해당 섹터로부터 빠르게 이탈하는 대장균들이 관찰됐다. 

연구팀 관계자는 "대장균이 죽을 때 'AcrA'라는 단백질 성분을 방출하는데, 이것이 살아있는 살아있는 동료 대장균의 외막에 달라붙으면서 탈출이 시작됐다"며 "이 화학적 신호는 위험을 알리는 데 그치지 않고, 살아있는 세균의 막에 장착된 펌프 기능을 가동, 항생제를 배출하게 한다"고 설명했다.

이 내용이 사실이라면, 세균은 '네크로시그널'로 동료에 위험을 알리는 것도 모자라, 항생제에 일정한 내성을 키우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연구팀 관계자는 "네크로시그널은 미래에 대한 행동이다. 이로 인해 여러 유전자에 일종의 스위치가 들어가 해로운 물질에 대한 내성을 얻게 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더 흥미로운 점은 대장균이 전술을 사용한다는 사실이다. 대장균 무리에 항생제를 투여하고 관찰한 결과, 대장균 개별 소집단이 유전적으로 흩어져 있었는데 개중에는 항생제에 특히 약한 소집단이 존재했다. 연구팀은 세균 무리가 일부러 약한 소집단을 만들어내고 이를 생존전략으로 삼는다고 봤다.

이에 대해 연구팀 관계자는 "항생제 때문에 약한 소집단이 사멸하더라도 이들로부터 네크로시그널을 받은 다른 동료들은 목숨을 건지게 된다"며 "지능이 없는 세균이 일부를 희생시켜 전체를 살리는 놀라운 전술을 쓰는 셈"이라고 말했다. 

대장균 무리가 보여준 전술은 대승을 위해 희생을 감수하는 손자병법의 '육참골단(肉斬骨斷, 자기 살을 내주고 상대의 뼈를 끊는다)'에 해당한다. 연구팀은 "뇌가 없어 지능도 없다고 여겨진 세균이사실은 교묘한 장치를 이용해 인류에 대한 내성을 키우는 사실은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정이안 기자 anglee@sputnik.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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