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룩말의 줄무늬는 아직까지 주요 연구 대상이며 많은 관심을 불러 일으킨다. 줄무늬 진화의 이유 중 가장 잘 알려진 게 포식자의 시야 교란이다. 실제로 여러 마리가 섞여있으면 사자나 표범 등이 한 마리를 고르는 것이 어려워진다.

하지만 나무가 듬성듬성한 아프리카의 사파리에서 줄무늬는 오히려 눈에 잘 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움직임 현혹 가설(motion dazzle hypothesis)'이다. 고대비(high contrast)의 기하학적 패턴의 움직이는 표적은 포식자에게 시각적으로 어지러움을 유발한다는 내용이다. 이를 바탕으로 제1차 세계대전 중에는 폭격을 피하기 위해 선박에 얼룩덜룩 칠을 했다.

얼룩말 얼룩무늬 <사진=pixabay>

다만 영국 에식스대학교 심리학 연구팀은 14일 로열소사이어티B: 생물학' 저널에 발표한 논문을 통해 얼룩말 무늬에 대한 지금까지의 가설을 모두 반박했다. 

연구팀은 "현재까지의 움직임 현혹 가설은 근거가 모호한 소수를 대상으로 테스트가 이뤄졌다"며 "우리는 'Dazzle Bug'라는 온라인 게임을 플레이한 7만7000명의 유저를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새로운 결론에 도달했다"고 밝혔다.

이 게임은 나무나 풀 등 배경 위에서 이리저리 움직이는 사각형 물체를 터치하는 방식이다. 스테이지가 진행될수록 목표물을 더 찾기 어렵게 '진화'하도록 프로그래밍됐다.

실험 결과 목표물은 점점 어지러운 모습으로 변하는 게 아니라 단순해지는 패턴을 보였다. 실험 참가자들은 이에 따라 플레이에 더 어려움을 느꼈다. 연구팀은 "이는 낮은 모션 에너지(lower motion energy)가 더 구분하기 어렵다는 말"이라며 "결국 기존 가설과는 반대로 튀지않고 무난한 목표물이 포식자 눈에 가장 잘 안 보인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Dazzle Bug 게임 화면. 하얀 부분을 마우스로 클릭하는 방식이다. <사진=Dazzle Bug>

연구를 주도한 애나 휴즈 박사는 "이번 실험은 과거의 가설을 반박하는 가장 확실한 증거"라며 "단순히 포식자로부터 위장하기 위한 목적이라면 얼룩말은 줄무늬가 아닌 회색으로 진화해야 했다"고 설명했다.

물론 얼룩 무늬의 잇점은 '위장용' 말고도 있다. 수면병이나 아프리카 말병, 말 인플루엔자 등 치명적인 병균을 옮기는 말파리나 흡혈파리 등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얼룩이 필요하다. 파리들이 얼룩 무늬로 인한 착시로 착륙 지점을 제대로 찾지 못하고 부딪혀버린다는 주장은 유명하다. 

말의 줄무늬가 뜨거운 아프리카 환경 속에서 체온을 떨어뜨려주는 효과가 있다는 이론도 있다. 그러나 위장 이론과 마찬가지로 대부분 가설은 반박의 여지가 충분하다. 

휴즈 박사는 "인간이 얼룩말을 연구한 것은 이제 100년 남짓"이라며 "아직도 달릴 길은 멀고도 멀다"고 말했다.

채유진 기자 eugene@sputnik.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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