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남자와 여자의 뇌구조가 다르다고 한다. 남녀 성격차가 뇌구조 때문이란 이야기는 학계에서도 오래됐다. 편도체의 차이 탓이라는 학자도 있고, 유전자가 원인이라는 의사도 있다. 어찌됐건 남자가 웬만해선 길을 묻지 않고, 여자는 지도를 잘 못 보는 이유가 남녀 뇌구조 탓이라는 주장은 오늘도 계속된다.

좌뇌와 우뇌형 인간만큼 속설이 많은 남자 뇌와 여자 뇌가 사실 과학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회의적 연구결과가 나왔다. 뇌는 애초에 성별로 구분할 수 없음에도 관련 가설이 많은 건 “남자(또는 여자)는 원래 이렇다”는 고정관념, 즉 스테레오타입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미국 로잘린드프랭클린대학교 뇌 전문가 리즈 엘리엇 박사는 연구를 거듭할수록 뇌의 남녀차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확신하는 인물이다. 박사는 최근 실시한 뇌 연구에서도 같은 답을 얻었다.

남녀의 성격차이가 뇌구조에서 비롯된다는 가설은 오래됐다. <사진=pixabay>

박사가 뇌를 성별로 구분하는 데 회의적인 이유는 이를 뒷받침할 근거가 너무 부족해서다. 무려 30년간 관련 연구를 거듭해온 그는 단순히 크기 차이를 제외하면 남녀의 뇌 구조나 활동에 유의미한 차이가 전혀 없다고 본다. 한쪽 성별에 특유한 개성이나 능력이 존재한다는 걸 증명할 차이도 발견되지 않았다.

엘리엇 박사에 따르면 남녀의 뇌는 차이점보다 공통점이 많다. 그는 “동물에 흔한 성차가 인간의 뇌에도 있다는 설은 참 과학적으로 들린다”면서도 “어떤 새는 수컷과 암컷의 지저귀는 뇌 영역 크기 차이가 6배나 되지만, 이런 현상은 인간의 뇌에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실제 남성의 뇌는 여성보다 11% 정도 클 뿐이다. 뇌 크기는 몸집에 비례하는데, 이건 내장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뇌의 성별에 의한 크기 차이는 내장의 그것보다 훨씬 덜하다. 심장이나 폐, 신장의 경우 남성은 여성보다 17~25%가량 크다.

박사는 “뇌의 전체 크기 차이가 고작 11%일 뿐, 각 영역으로 따지면 성별에 따른 크기 차이는 1%를 넘는 곳이 없다”며 “더욱이 이런 작은 차이조차 지역별 또는 인종별로 구분해버리면 일관성이 없어진다”고 말했다.

<사진=영화 '500일의 썸머' 스틸>

엘리엇 박사는 흔히 말하는 남성형 뇌와 여성형 뇌는 성별이 아니라 크기에 따른 구분으로 보는 것이 맞다고 본다. 뇌 회백질에 대한 백질의 비율 또는 좌뇌와 우뇌의 비율로 따지는 것이 더 과학적이라는 이야기다.

박사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다른 최신 연구도 있다. 남녀의 뇌 스캔 이미지를 인공지능(AI)에 학습시키면서 그 차이를 구분하게 했더니, AI는 80~90% 확률로 남성과 여성의 뇌를 분류했다. 다만 뇌 크기를 임의로 비슷하게 조정하자 정답률은 60%대로 뚝 떨어졌다. 현재로서 크기 말고는 남녀의 뇌를 구분할 방법이 없다는 의미다. 게다가 AI는 지역별·인종별 뇌를 사진으로 학습한 뒤 정확한 지역이나 인종을 다시 특정하는 데 애를 먹었다.

이에 대해 엘리엇 박사는 “뇌 스캔 사진까지 동원하더라도 인간의 뇌를 남자와 여자, 인종, 지역 등으로 구분하는 특징은 현재로선 없다는 걸 알 수 있다”며 “사실 뇌는 성차보다도 개인차가 훨씬 크다. 개인의 뇌에는 남성성과 여성성이 복잡하게 뒤섞인 회로가 갖춰져 있다”고 언급했다.

자기공명영상(MRI) 장치가 개발된 이래, 학자들은 미지의 영역인 뇌를 개척하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써왔다. 그 결과물로 남녀의 뇌 차이나 우뇌형 인간 또는 좌뇌형 인간 등 갖은 속설이 탄생했다.

정이안 기자 anglee@sputnik.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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