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소아메리카 지역에 살던 고대들이 사람의 몸에서 피를 뽑아내는 괴이한 의식을 행했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미국 인디애나주립대학교 연구팀은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최신 논문을 30일 국제 저널 ‘고대 메소아메리카(Ancient Mesoamerica)’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멕시코 메소아메리카 지역을 대표하는 키에차파(Quiechapa) 유적에서 약 30개나 발굴된 석재 경기장들이 사혈 의식과 관련됐다고 추측했다.
최소 2300년 전 조성된 이 경기장들은 메소아메리카 지역의 전통 공놀이가 펼쳐진 곳으로 여겨진다. 마치 영어 알파벳 I처럼 생긴 것이 특징으로, 양쪽에는 선수가 출입하는 계단도 마련됐다.
메소아메리카 문명을 이해하는 중요한 요소인 이 공놀이는 최소 3600년 전부터 치러졌다. 공 한 개를 사용해 마주한 두 팀이 뭔가 경쟁한 것으로 보이며, 애리조나나 뉴멕시코 등 현재의 미국 남서부를 비롯해 남미 콜롬비아 인근까지 광범위한 지역에서 흔적이 발견됐다.
연구팀이 경기장 안에서 메소아메리카 사람들이 사혈 의식을 한 것으로 의심한 이유는 I자형 디자인이다. 발굴 관계자는 “이런 독특한 경기장은 물이나 혈액을 이용한 신성한 의식을 위해 지어졌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메소아메리카 지역에서 발원하고 번성한 마야와 테오티우아칸, 아즈텍 등 고도의 문명과 사혈 풍습은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외부 영향을 받지 않던 메소아메리카의 문명들은 16세기 스페인이 침략하면서 무너졌는데, 스페인 성직자 후안 루이스 데 알라르콘(1581~1639)은 원주민 제사장들이 사람 피를 빼 바위에 판 작은 구멍에 붓게 했다고 기록했다.
연구팀은 발굴된 유적을 다양한 각도에서 촬영한 다시점 이미지에 3차원 형상 복원(SfM) 기술을 사용, 경기장 형태를 분석했다. 화상 알고리즘을 이용, 3D로 재현한 결과 알라르콘이 언급한 사혈용 구멍이 경기장 안에 있었을 것으로 추측했다.
연구팀 관계자는 “키에차파는 비록 많이 풍화됐지만 I자형 경기장들은 비교적 온전했다”며 “아직 목적이나 규칙을 밝히지 못한 당시 사람들의 공놀이는 단순한 스포츠나 유흥이 아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경기장이 한 지역에 무려 30개나 분포한 것은 구기와 아주 중요한 의식, 종교 행사가 결합돼 있었음을 시사한다”며 “경기 전후에 사혈을 했는지, 아니면 승패에 따라 의식을 치렀는지 알아내는 것이 향후 과제”라고 전했다.
연구팀은 메소아메리카 사람들이 물이나 혈액을 아주 신성시한 문헌이 적잖은 만큼, 중요한 경기가 열리는 곳에서 농업이나 자손 번영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낸 것으로 추측했다.
이번 발견은 오는 4월 3일까지 시카고에서 열리는 미국 고고학협회(SAA) 연례총회에서 발표된다.
정이안 기자 anglee@sputnik.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