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속에 덫을 놓는 신종 식충 식물이 발견됐다. 대부분의 식충 식물이 지상에 올가미를 놓는 것과 달라 학계 관심이 쏠렸다.

영국 브리스톨대학교 연구팀은 지난달 말 국제 학술지 ‘PhytoKeys’를 통해 인도네시아 보르네오 섬 북 칼리만탄 주의 열대우림에서 발견한 새 식충식물을 공개했다.

네펜데스 푸디카(Nepenthes pudica)로 명명된 이 식충식물은 항아리 같은 포충낭으로 함정을 만들어 희생양을 찾는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쌍떡잎식물 끈끈이귀개목 벌레잡이통풀과의 한 속인 네펜데스의 친척뻘이다.

원래 네펜데스 속은 잎이 변화해 생긴 길쭉한 항아리 같은 포충낭을 여럿 갖고 있다. 일반적으로 네펜데스를 포함한 식충식물은 이 포충낭을 지상에 드러내고 먹이를 잡는다. 다만 이번에 발견된 네펜데스 푸디카는 달랐다.

A. 흙에 묻힌 상태에서 발굴된 포충낭 B. 나무뿌리 아래 공동에서 발견된 포충낭. 빛이 거의 들지 않는데도 잎자루가 녹색인 점이 특이하다. <사진=PhytoKeys 공식 홈페이지·M. Dančák>

연구팀 관계자는 “칼리만탄 주의 축축한 열대우림 흙에서 발견된 네펜데스 푸디카의 포충낭 속에는 먹잇감이 가득했다”며 “약 160종으로 분류되는 네펜데스를 지금까지 조사했지만 이런 유형의 식충식물은 전례가 없다”고 전했다.

지하에 줄기를 형성하는 네펜데스 푸디카는 엽록소가 없는 작고 하얀 잎을 맺는다. 일부 잎이 변형되는 포충낭은 최대 11㎝로 붉은빛을 띤다.

연구팀 관계자는 “네펜데스 푸디카의 포충낭은 땅 밑으로 뻗어 거기 사는 개미나 진드기 등을 사냥한다”며 “굳이 이 식물이 땅속에 덫을 놓은 것은 건조한 고지에 적응한 결과일 수 있다”고 추측했다.

실제로 네펜데스 푸디카가 발견된 곳은 습한 칼리만탄 주지만 이 식물들이 집단으로 서식하는 곳은 해발 1100~1300m의 비교적 건조한 산등성이였다. 연구팀은 이런 환경 때문에 네펜데스 푸디카의 포충낭이 땅속으로 들어간 것으로 보고 있다.

C, D. 무성한 이끼 아래 드러난 온전한 형태의 포충낭 다발 <사진=PhytoKeys 공식 홈페이지·M. Dančák>

조사 관계자는 “땅 밑은 습도 등 환경이 안정돼 건기에도 먹이가 많을 것이라는 걸 식물도 아는 것”이라며 “다른 네펜데스 동료들과 마찬가지로 주된 먹이는 개미지만 포충낭 안에서는 모기 유충과 선충, 보고된 적이 없는 지렁이류 등 많은 생물이 발견됐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네펜데스 푸디카가 보르네오 섬의 고유종이며, 좁은 범위에만 분포하고 개체 수가 적은 데다 서식 영역이 상실됐을 수 있어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의 적색리스트(멸종 직전 종)에 들어갈 조건을 충족했다고 판단했다.

이번 발견과 관련, 연구팀은 인도네시아 보르네오 섬이 세계 생물 다양성의 핫스팟임을 입증했다는 입장이다. 조사 관계자는 “개성만점 식충식물의 발견이 보르네오 섬의 열대우림 보전으로 이어지길 바란다”며 “원시림이 야자기름 플랜테이션 현장으로 바뀌면서 자연훼손이 심해 이를 막거나 최소한 늦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이안 기자 anglee@sputnik.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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