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나 문어 등 두족류의 뇌가 인간과 흡사한 진화 과정을 거쳤다는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나왔다.

미국 하버드대학교 분자생물학자 크리스틴 쾨니그 교수 연구팀은 9일 국제 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Current Biology)'에 소개된 논문에서 5억 년 전 서로 갈라져 각자 진화한 인간과 두족류의 뇌가 비슷하게 성장했다고 주장했다.

영장류인 인간과 두족류인 문어 및 오징어는 서로 멀리 떨어진 생물이다. 다만 복잡한 뇌와 신경계를 발달시킨 진화 설계도는 일부 학자들이 서로 같다고 볼 정도로 연관성이 의심돼 왔다.

두족류는 무척추동물 치고는 뇌의 정보 처리 능력이 뛰어나고 도구를 사용하며 위장술로 능숙하게 몸을 숨길 줄 안다. 호기심이 많고 장난을 치기도 하며, 잠이 들 때면 꿈까지 꿔 학자들의 오랜 연구 대상이다.

롱핀 오징어의 배아 <사진=크리스틴 쾨니그>

연구팀은 두족류와 인간의 뇌 발달 과정이 많이 닮았다는 가설로 미뤄 이 두 계통이 같은 구조를 이용해 각각 독자적으로 신경계를 진화한 것으로 추측했다.

이 생각이 맞는지 알아보기 위해 연구팀은 초고해상도 카메라를 이용, 미국에서 주로 잡히는 롱핀 오징어(Longfin inshore squid) 배아를 관찰했다.

크리스틴 쾨니그 교수는 "이번 연구에서 오징어 배아의 뇌 발달을 알아보기 위해 형광색소로 신경계 전구세포(신경계의 각종 세포를 생산하는 전구세포)를 칠하고 이를 현미경 카메라로 들여다봤다"며 "척추동물과 마찬가지로 오징어 줄기세포는 길고 밀도가 높은 구조로 변화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런 구조를 형성하는 것은 사람의 위중증 상피 세포처럼 크고 복잡한 조직으로 성장하기 위해 중요한 단계"라며 "두족류의 세포 핵의 크기나 조직, 움직임은 척추동물과 흡사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덧붙였다.

문어는 위장술에 능하고 잠을 잘 때 꿈을 꾸며, 도구를 능숙하게 사용하는 똑똑한 동물이다. <사진=pixabay>

롱핀 오징어 배아에서 확인된 이런 특징은 고도의 뇌와 눈을 발달시키는 척추동물의 특권처럼 여겨졌다. 연구팀은 이를 보다 면밀히 조사하면 두족류의 뇌가 고도로 발달한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사실 두족류가 사람과 같은 신경 설계도를 가졌을 것이라는 예상은 오래전에 나왔다. 생물학자들은 두족류가 신경조직 안에 다양한 마이크로RNA(유전자 스위치를 제어하는 작은 분자)를 가졌으며, 그 형태가 인간과 비슷한 점에 주목해 왔다.

연구팀은 향후 두족류의 신경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각종 세포가 언제, 어떻게 출현하는지 알아보고, 이를 척추동물과 비교할 계획이다. 인간과 두족류 뇌의 기본적 설계가 같다면 두 뇌가 발달하는 타이밍 역시 비슷할 것으로 연구팀은 예상했다.

크리스틴 쾨니그 교수는 "이번 연구를 통해 우리는 생명의 다양성 연구가 아주 중요하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며 "생물 다양성을 추구함으로써 우리 자신에 대한 오래된 의문의 답도 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윤서 기자 lys@sputnik.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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