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발전소 폭발사고가 난 체르노빌의 선충은 극한의 방사선에도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았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미국 뉴욕대학교 연구팀은 6일 공개한 조사 보고서에서 이같이 주장했다. 우크라이나에 자리한 체르노빌 원전은 구소련 시절이던 1986년 4월 26일 폭발해 주변이 고농도 방사선에 오염됐다. 인간이 사라지면서 서울의 약 4배인 2600㎢의 출입 금지구역이 만들어졌고, 세월이 지나면서 야생 동식물의 낙원으로 변모했다.
연구팀은 갑작스러운 환경 변화로 방사선에 강한 종과 개체가 생겼을지 모른다고 추측했다. 의문을 풀 힌트를 선충에서 찾기로 하고, 방호복을 갖춰 체르노빌 원전 출입 금지구역에서 선충을 채집했다.
유전자 조사 결과 선충은 일대가 높은 수준의 방사선에 오염됐음에도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다. 뉴욕대 생물학자이자 생태영화 제작자 소피아 틴토리는 "이런 환경에서 생물의 유전자는 심각한 손상을 입게 마련"이라며 "방사선 오염을 뛰어넘는 선충의 회복력과 적응 능력은 의학 등 다양한 분야의 응용이 기대될 정도"라고 전했다.
이어 "원래 선충은 아주 강한 동물로, 개중에는 4만 년간 영구동토에서 잠자다 깨어난 개체도 있다"며 "선충의 게놈은 아주 단순하고 수명이 짧고 세대의 사이클도 빨라 방사선이 몸이나 DNA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조사하기 안성맞춤"이라고 덧붙였다.
연구팀은 정확한 조사를 위해 출입 금지구역의 썩은 과실, 잎, 흙에서 선충 수백 마리를 모아 일일이 조사했다. 미국과 호주, 독일 등 다른 지역의 일반 선충과도 비교 분석했다. 그럼에도 방사선에 의한 DNA 손상은 전혀 확인되지 않았다.
소피아 틴토리는 "체르노빌과 같은 환경에서 예상되는 광범위한 염색체 변화도 없었고, 유전자 돌연변이율과 방사선 세기의 상관관계도 인정되지 않았다"며 "게다가 선충의 세대에 걸친 영향을 조사해 보니, 조상이 방사선에 피폭됐다고 해서 자손이 방사선에 한층 강해지는 일도 없었다"고 말했다.
이런 점에서 연구팀은 체르노빌 출입 금지구역의 환경이 선충의 게놈에 영향을 준 증거는 전혀 없다고 결론 내렸다. 이번 발견은 사람에 따라 암 치료의 용이성에 차이가 있는 이유를 해명하는 힌트가 될지도 모른다고 연구팀은 기대했다.
이윤서 기자 lys@sputnik.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