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은 4년간 갈고닦은 선수들이 기량을 쏟아내는 전쟁터이자 색의 전시장이기도 하다. 브라질의 노란색, 일본의 파란색, 네덜란드의 주황색처럼 각국 유니폼은 국가의 정체성을 상징한다.

월드컵 참가국 선수들의 유니폼은 단순한 볼거리에 그치지 않는다. 과학자들은 오래전부터 경기복 색상이 선수들의 심리, 심판의 판단, 경기 흐름에 미묘한 변화를 줄 가능성에 주목했다. 과연 유니폼 색깔은 축구 경기에 어떤 영향을 줄까.

영국 더럼대학교 러셀 힐 교수 연구팀은 2005년 네이처에 실험 보고서 ‘경쟁 상황에서 인간 수행능력을 높이는 빨간색(Red enhances human performance in contests)’을 내 주목을 받았다. 빨간색은 우리나라 대표팀 유니폼에 주로 사용됐고, 공식 서포터스 클럽 붉은악마를 상징하는 색상이다.

연구팀은 2004 아테네올림픽 복싱, 태권도, 레슬링 종목 출전자에 무작위 배정된 빨간색과 파란색 보호구의 영향에 집중했다. 각 경기의 승패를 분석한 연구팀은 빨간색 보호구를 착용한 선수가 상대적으로 더 자주 이긴 것을 알아냈다.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대표 색상인 빨간색 <사진=대한축구협회>

빨간색은 동물의 세계에서 공격성, 지배성, 생존경쟁과 주로 연결된다. 사람에게도 빨간색은 흥분, 위험, 우위의 신호로 받아들여진다. 연구팀은 선수가 빨간색 유니폼을 입으면 스스로 더 강하다고 느끼거나, 상대가 무의식적으로 위축될 수 있다고 결론 내렸다. 다만 이 연구는 1 대 1 격투기 종목을 대상으로 했기에 축구에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려웠다.

축구는 한 팀 11명이 넓은 경기장에서 움직이고 패스와 압박, 공간 활용, 전술이 뒤섞인다. 유니폼 색깔 하나가 승패를 좌우한다고 단언하기는 무리가 있다. 미국과 독일 공동 연구팀은 2020년 실험 보고서 ‘스포츠에서 유니폼 색상이 미치는 영향에 대한 비판적 검토(Critical review of uniform color effects in sports)’를 발표하고, 유니폼 색깔이 경기 결과를 직접 바꾼다는 증거는 아직 약하다고 평가했다.

색깔은 경기 결과보다 인식에 더 강하게 작용한다고 본 연구도 있다. 오스트리아 빈대학교 연구팀은 2014년 실험 보고서 ‘축구경기에서 유니폼 색상이 태클 판정에 미치는 영향(The impact of uniform color on judging tackles in association football)’을 내고 태클 장면을 평가하는 심판의 판단에 유니폼 색상이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실험 참가자들은 빨간색 유니폼을 입은 선수의 태클을 더 거칠게 판단하는 경향이 있었다.

빨간색과 검은색 유니폼이 선수나 상대방, 심판의 심리에 영향을 준다는 주장도 있다. <사진=pixabay>

검은색 유니폼 연구도 꽤 많다. 미국 심리학자 마크 G.프랭크 박사는 1988년 조사 보고서 ‘자기·사회적 인식의 어두운 면: 검은색 유니폼과 프로스포츠의 공격성(The dark side of self and social perception: Black uniforms and aggression in professional sports)’내 유명세를 탔다.

내셔널풋볼리그(NFL) 및 내셔널하키리그(NHL) 경기를 분석한 박사는 검은색 유니폼을 입은 팀이 더 많은 페널티를 받는 경향을 파악했다. 선수가 더 공격적으로 행동한 결과일 수도 있고, 심판이나 관중이 검은색을 더 위협적으로 받아들였을 수도 있다고 박사는 봤다. 축구에서도 어두운 색상 유니폼은 강한 인상, 위압감, 집중력과 관련이 있고, 거친 플레이 이미지와 연결될 가능성이 제기돼 왔다.

그라운드 색깔, 즉 녹색과 대비되는 유니폼이나 축구화를 일부러 신기도 한다. 축구에서 패스 성공 여부는 불과 0.1초 차이로 갈릴 수 있다. 유니폼 색이 그라운드와 잘 구분되면 동료의 위치를 빠르게 파악하는 데 분명 도움이 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밝은 색상 유니폼을 고집하는 국가도 있다.

브라질 축구를 상징하는 노란색 유니폼. 국기의 색상에서 기인했다. <사진=인공지능(챗GPT) 생성 이미지>

골키퍼 유니폼 색상은 확실히 과학적이다. 골키퍼는 팀 동료와 다른 색을 입어야 하며, 때로 형광색에 가까운 강렬한 색을 선택한다. 심판과 선수들이 골키퍼를 즉시 구분하도록 정한 규정 때문이기도 하지만, 공격수의 시야에 영향을 주려는 의도도 있다. 키커와 1 대 1로 마주하는 페널티킥 상황에서 골키퍼의 큰 동작과 선명한 유니폼 색상은 키커에 심리적 압박을 준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종합적으로 보면, 축구선수의 유니폼 색깔을 100% 과학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빨간색이 강해 보여 스페인이 즐겨 입는 것이 아니고, 브라질의 노란색이 경기력을 높이기 위해 선택된 것도 아니다. 대부분 역사와 국기 색상, 문화, 축구 전통에서 출발한다. 다만 그 색이 경기장 안에서 어떤 인상을 만들고 상대와 심판, 관중에 어떻게 보이는지는 과학의 영역이다.

유니폼 색깔이 승패를 결정하는 마법은 아니지만, 극적인 장면 하나가 경기 결과를 바꾸는 월드컵 무대에서는 작은 심리적 차이도 무시하기 어렵다. 선수의 몸을 감싼 유니폼의 색상은 국가의 상징인 동시에, 상대의 눈과 뇌에 도달하는 첫 번째 신호인 관계로 디자인을 넘어선 과학이 곳곳에 숨어 있다.

정이안 기자 anglee@sputnik.kr 

⇨스푸트니크 블로그 바로가기
⇨스푸트니크 유튜브 채널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