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과 같은 항성이 수명을 다하면 주변의 행성도 평온한 최후를 맞기 어렵다. 주성이 적색거성으로 부풀어 오르는 과정에서 가까운 행성을 집어삼키거나 궤도를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이 잔혹한 운명을 피한 행성을 제임스웹우주망원경이 포착해 학계가 술렁였다. 미국 우주망원경과학연구소(STScI)와 영국 세인트앤드루스대학교 등이 참여한 국제 연구팀이 최근 공개한 외계행성 WD 1856 b(WD 1856+534 b)다.
WD 1856 b는 지구에서 용자리 방향으로 약 80광년 떨어진 백색왜성 WD 1856(WD 1856+534)을 공전한다. WD 1856 b는 2020년 처음 확인됐는데, 연구팀은 제임스웹우주망원경이 얻은 정보를 분석하다 이 천체가 대기를 유지한 채 WD 1856 곁을 도는 것을 알아냈다.
STScI 수전 멀랠리 박사는 "백색왜성은 태양 정도 질량의 별이 연료를 소진하고 바깥층이 우주로 방출된 뒤 남는 뜨거운 핵"이라며 "별은 백색왜성이 되기 전 적색거성 단계에 들어가는데, 이때 부피가 크게 팽창해 가까운 행성을 집어삼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WD 1856 b는 백색왜성에서 약 320만㎞ 떨어진 궤도를 불과 34시간 만에 한 바퀴 돈다"며 "지구와 태양 거리의 약 50분의 1에 불과한 거리를 돌기에 처음부터 이 위치에 있었다면 주성이 적색거성으로 팽창했을 때 살아남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전했다.
연구팀은 제임스웹우주망원경의 근적외선분광기(NIRSpec)로 WD 1856 b가 백색왜성 앞을 지나는 순간을 관측했다. 행성이 주성 일부를 가릴 때 대기를 통과한 빛의 파장을 분석하면 어떤 성분이 있는지 추정할 수 있다.
다만 백색왜성 자체가 어두운 데다 WD 1856 b가 별 앞을 통과하는 시간은 약 8분에 불과해 쉽지는 않았다. 다행히 WD 1856 b가 목성만큼 큰 덕에 통과 과정에서 주성의 절반 이상을 가렸다. WD 1856 b의 대기에서는 에어로졸과 탄화수소의 뚜렷한 흔적이 검출됐다. 메탄의 비율은 약 7%로 추정됐고, 행성의 질량은 목성의 약 4.3~10.9배로 계산됐다.
수전 멀랠리 박사는 "에어로졸은 대기에 떠다니는 미세한 고체나 액체 입자"라며 "메탄을 비롯한 탄화수소는 생명체만 만들어내는 물질은 아니지만, 행성의 형성과 대기 화학을 추적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고 말했다.
박사는 "가장 놀라운 것은 온도였다. WD 1856 b의 유효온도는 약 117~139℃로 분석됐다"며 "현재 백색왜성이 비추는 약한 빛만 고려하면 영하 113℃ 정도여야 하지만 행성은 훨씬 뜨거웠다"고 언급했다.
연구팀은 이 열이 행성의 이동 과정에서 발생했을 가능성을 떠올렸다. WD 1856 b가 별의 적색거성 단계에 직접 휘말리고도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 주성이 백색왜성이 된 뒤 먼 궤도에서 현재 위치로 이동했다는 이야기다. 행성이 다른 천체의 중력에 의해 길쭉한 궤도로 밀려난 뒤 백색왜성에 접근했고, 강한 조석력이 궤도를 원형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내부가 가열됐다는 추측이다. 냉각 모델과 관측값을 결합한 결과, 이 재가열은 백색왜성이 형성되고 약 30억~55억 년 뒤 일어난 것으로 파악됐다.
학계는 WD 1856 b가 주성의 죽음 이후 현재의 좁은 궤도로 이동한 드문 사례일 가능성에 무게를 실었다. 별의 죽음이 모든 행성의 종말을 뜻하는 것은 아니며, 일부 거대한 행성은 살아남아 전혀 다른 형태의 행성계를 만들 가능성을 이번 연구가 보여줬다고 자평했다.
태양 역시 약 50억 년 뒤 적색거성으로 팽창한 뒤 백색왜성이 될 것으로 보인다. 수성과 금성은 사라질 가능성이 크고 지구의 운명은 여전히 논쟁 중이다. 훨씬 바깥쪽의 목성과 토성은 살아남을 가능성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정이안 기자 anglee@sputnik.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