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퍼 놀란(55) 감독의 영화 '오디세이'가 흥행하면서 고대 그리스 신화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커졌다. 고대 그리스 사상이나 문화도 시선을 받는 가운데, 청동 거인 탈로스도 재조명됐다.

탈로스는 청동으로 만든 거대한 수호자로, 크레타 섬을 돌며 외부의 침입을 막았다고 전해진다. 단순히 힘이 센 괴물이 아니라 스스로 움직이고 정해진 임무를 수행했다는 점에서 오늘날에는 고대인이 상상한 자동 인형 또는 인공 생명체로 언급된다.

전승에 따르면 탈로스는 하루 세 차례 크레타 섬을 돌며 해안을 감시했다. 접근하는 배를 발견하면 거대한 바위를 던져 쫓아냈고, 침입자를 청동 몸을 달아오를 정도로 가열한 뒤 끌어안아 죽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크레타섬에 무단으로 접근한 선백에 바위를 던지는 탈로스 <사진=인공지능(챗GPT) 생성 이미지>

탈로스의 제작자를 두고는 여러 설이 있다. 불꽃과 금속의 신 헤파이스토스가 탈로스를 만들었다는 기록이 여럿 있다. 올림포스 최고의 대장장이 헤파이스토스가 빚은 탈로스는 크레타의 왕 미노스에게 주어져 섬을 지키는 임무를 맡았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탈로스의 구조다. 신화에서는 목에서 발목까지 하나의 혈관이 이어졌고, 그 안에 인간의 피가 아닌 신들의 체액 이코르가 흘렀다고 기록됐다. 이 혈관의 끝인 발뒤꿈치에는 이코르가 빠져나가지 않도록 마개 또는 못이 박혀 있었다. 청동 몸 자체는 매우 단단했지만 이 부분이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마개가 빠지면 내부의 이코르가 모두 흘러 탈로스는 움직이지 못했다.

단순히 청동 인간이 움직인다는 설정에서 끝나지 않고, 몸 안을 순환하는 액체와 이를 유지하는 구조, 특정 부품이 손상되면 기능이 정지한다는 설정까지 갖췄다는 점은 분명 현대의 기계 장치, 특히 로봇을 떠올리게 한다.

헤파이스토스가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탈로스의 유일한 약점은 발뒤꿈치의 마개(못)다. <사진=인공지능(챗GPT) 생성 이미지>

탈로스의 최후는 이아손과 아르고호 원정대의 이야기에 등장한다. 황금 양털을 얻은 이아손 일행이 귀환 도중 크레타에 접근하자 탈로스가 바위를 던져 상륙을 막았다. 이때 원정대와 함께 있던 메데이아가 나섰다. 세부 내용은 전승과 기록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메데이아의 마법과 계략으로 탈로스의 발뒤꿈치에 자리한 마개가 빠지면서 이코르가 흘러나왔고 결국 쓰러졌다는 점은 공통적이다.

쓰러진 탈로스를 표현한 고대 그리스의 일부 도기는 기원전 400년 무렵 제작됐다. 이는 탈로스 이야기를 문헌으로 남긴 헬레니즘 시대 시인 아폴로니오스 로디오스에 앞선다. 따라서 탈로스는 한 작가가 뒤늦게 만든 캐릭터가 아니며, 고대 그리스 사회에 널리 전해진 신화적 존재일 가능성이 있다.

이코르가 흐르는 관을 통해 동력을 얻고, 명령에 따라 스스로 움직이는 점에서 탈로스를 고대 그리스의 로봇으로 보는 이도 있다. <사진=인공지능(챗GPT) 생성 이미지>

탈로스는 현대에 들어 종종 ‘최초의 로봇’ 또는 ‘고대의 휴머노이드’로 소개된다. 스스로 움직이며 명령에 따라 임무를 수행한 점, 인간과 비슷한 형태를 가진 점, 내부 작동 구조와 기능 정지 조건 때문이다. 일부 전승에서는 탈로스가 죽음을 두려워하거나 불멸을 바라는 듯한 상황도 그려졌다. 현대 SF 영화에서 반복되는 인공 생명체의 자의식이나 감정 문제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물론 탈로스를 고대 그리스인이 고도의 로봇 기술을 보유한 증거로 해석하는 것은 무리다. 탈로스와 같은 인간형 기계가 당시 제작됐다는 고고학적 증거는 아직 없다. 그리스 신화에 헤파이스토스가 만든 자동 장치와 움직이는 존재들이 반복해 등장하는 점에서, 고대 그리스인의 기술적 상상력이 뛰어난 점은 잘 알 수 있다.

김한별 기자 khstar@sputnik.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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