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눈을 속이는 유명한 착시를 인공지능(AI)도 피하지 못했다. 실제로는 흑백뿐인 회전 무늬에서 예측형 AI가 존재하지 않는 색을 만들어내면서, 약 200년간 풀리지 않은 색채 착시의 원인을 밝힐 새로운 단서가 제시됐다.
일본 기초생물학연구소와 종합연구대학원대학, 소니컴퓨터사이언스연구소 교토 공동 연구팀은 이런 결과를 담은 실험 보고서 ‘예측 네트워크가 만들어내는 움직임 유발 색채 착시(Predictive networks generate motion-induced color illusions)’를 국제 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 6월 호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약 200년간 원리가 밝혀지지 않은 벤햄의 팽이(Benham's top)에 주목했다. 벤햄의 팽이는 흑백 무늬가 그려진 원반을 빠르게 돌리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옅은 색이 보이는 주관색 착시를 말한다.
실험에는 과거 영상을 바탕으로 다음 장면을 예측하는 인공신경망이 사용됐다. 연구팀은 먼저 자연과 도시를 촬영한 영상 등을 AI에 학습시킨 뒤, 이 과정에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흑백 벤햄의 팽이 영상을 입력했다.
정지한 팽이를 보여줬을 때는 별다른 색이 나타나지 않았다. 반면 팽이가 회전하자 AI가 예측해 만든 다음 장면의 곡선 부분에 옅은 색이 드러났다. 입력 영상에 색 정보가 전혀 없었지만 AI 출력에는 연구팀이 인공적 주관색이라고 부른 색채 현상이 똑같이 나타났다.
연구팀은 AI가 무작위로 색을 만들어냈는지 확인하기 위해 학습 영상을 바꿨다. 빨강과 초록, 파랑의 사각형이 움직이는 단순한 영상을 각각 학습시키자, 벤햄의 팽이에서 나타나는 색 역시 학습 과정에서 움직였던 물체의 색에 따라 달라졌다.
종합연구대학원대 우에다 쿄헤이 연구원은 “이는 예측형 AI가 학습 과정에서 움직임과 색의 관계를 익힌 뒤, 흑백 팽이의 움직임을 해석하면서 존재하지 않는 색을 다음 장면에 만들어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이어 “인간이 벤햄의 팽이에서 흑색과 백색 이외의 색상을 보는 원인에도 비슷한 예측 과정이 관여할 가능성을 이번 실험이 보여줬다”며 “지금까지는 망막에서 서로 다른 시각 신호가 처리되는 과정이 주요 원인으로 거론됐지만, 대뇌피질이 과거 경험을 바탕으로 앞으로 들어올 시각 정보를 예상하는 과정이 주관색 형성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떠올랐다”고 강조했다.
물론 AI가 인간과 똑같이 흑백 이외의 색을 봤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이번 연구가 인간의 벤햄 착시 원리를 완전히 규명한 것도 아니다. 다만 망막의 작용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웠던 밴햄의 팽이 현상에 뇌의 예측 메커니즘이 관여할 새 단서를 제시한 점에서 이번 실험은 의미가 있다.
박지연 기자 yeon@sputnik.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