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주의 묘지 지하에서 무려 550만 마리나 되는 야생벌 집단이 확인됐다. 묘지는 죽은 이들을 위한 공간이지만, 100년 넘는 세월 벌들의 안식처이기도 했다. 사실 이런 현상은 벌에 국한되지 않으며, 세계 각지의 묘지가 도시에서 밀려난 동식물의 보금자리가 되고 있다는 연구가 잇따르고 있다.
미국 코넬대학교 브라이언 댄포스 교수 연구팀은 뉴욕주 이사카의 이스트 론 묘지에 집단 서식하는 지중성(땅속에 둥지를 짓는) 애꽃벌과의 생태를 조사한 결과를 올해 4월 국제 학술지 아피돌로지(Apidologie)에 내 주목을 받았다.
연구팀은 묘지 약 6070㎡에 설치한 우화 트랩을 이용해 지하에서 올라오는 벌의 수를 조사했다. 이를 전체 면적으로 환산한 결과 벌 개체수는 약 310만~800만 마리, 평균 약 550만 마리로 추산됐다. 지금까지 학계에 보고된 지중성 야생벌 집단 가운데 최대 규모다. 과거 기록까지 확인하면 이 벌들은 적어도 1900년대 초부터 이곳에 살아온 것으로 추정된다.
왜 하필 묘지였을까. 연구팀은 이스트 론 묘지가 벌에게 보기 드물게 안정적인 환경을 제공했다고 결론 내렸다. 땅이 장기간 갈아엎어지지 않았고 농약 사용도 적으며, 벌이 굴을 파기 좋은 모래질 토양이 유지됐다. 약 500m 떨어진 코넬대 과수원도 봄철 꽃가루와 꿀을 지속적으로 공급했을 가능성이 있다.
묘지가 생물의 피난처가 된다는 사실은 처음 알려진 것은 아니다. 2024년 국제 학술지 컨서베이션 바이올로지에 발표된 세계 규모 분석이 유명하다. 27개국 50개 도시의 연구 70편을 종합한 결과, 묘지의 생물다양성 보전 기능은 전반적으로 일반 도시공원과 비슷한 수준이거나 뛰어났다.
식물에게도 묘지는 중요한 공간이다. 프랑스 연구팀이 일드프랑스 지역 760개 묘지의 식물 기록 4만802건을 분석했더니, 자생적으로 자라는 관속식물만 696종이었다. 이 가운데 593종인 85%가 토착종, 보전상 관심이 필요한 식물이 66종이었다. 이 조사 결과는 올해 4월 어번 에코시스템스에 발표됐다.
연구팀에 따르면, 일부 묘지에는 일반적인 도시 녹지에서는 보기 어려운 건조한 초지와 황야, 초원에 사는 식물이 남아 있었다. 오랜 기간 땅의 용도가 바뀌지 않고 개발 압력이 상대적으로 약했던 덕에 과거 서식환경의 일부가 섬처럼 보존됐다.
새들도 묘지를 적극 이용한다. 체코와 프랑스, 이탈리아, 폴란드의 묘지 90곳과 공원 79곳을 비교한 연구를 보면, 조류 다양성 측면에서 두 공간 사이에 뚜렷한 차이가 없었다. 나무가 많고 면적이 넓을수록 새 종류가 늘어나는 경향은 공원과 묘지에서 모두 확인됐다.
새와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묘지, 공원의 차이가 나타났다. 같은 연구에서 새 44종의 도피 행동을 조사한 결과, 새들은 공원보다 묘지에서 사람이 더 가까이 다가올 때까지 자리를 뜨지 않았다. 연구팀은 묘지가 공원보다 고요하고, 인간 활동이 적은 점이 새의 행동에 영향을 미쳤다고 판단했다.
이처럼 묘지가 생물다양성을 유지하는 이유는 특별한 시설이 있어서라기보다 사람이 덜 건드리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오래된 나무를 쉽게 베지 않고, 토양을 대규모로 뒤엎지 않으며, 건물을 새로 짓는 일도 상대적으로 적다. 도시에서는 보기 드물게 ‘장기간 변화가 적은 땅’이 묘지인 것이다.
모든 묘지가 저절로 생태보호구역이 되는 것은 아니다. 잔디를 지나치게 짧게 깎거나 제초제와 살충제를 과도하게 사용하고, 오래된 나무를 제거하면 이런 장점은 쉽게 사라질 수 있다. 반대로 묘지 특유의 정숙성과 낮은 개발 압력을 유지한다면 도시에서 사라지는 동식물이 살아가는 공간이 될 수 있다는 것이 학자들의 견해다.
김한별 기자 khstar@sputnik.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