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어떤 현상의 진상이 밝혀지면 과학, 그렇지 않으면 미스터리입니다. 거리가 멀 것 같은 과학과 미스터리가 실은 종이 한 장 차이로 상존하는 셈인데요. 스푸트니크가 발굴한 기묘한 미스터리와 아직 과학이 풀지 못한 기현상을 'SM(Sputnik Mystery)' 코너에서 다룹니다.

16세기부터 18세기까지 유럽에는 남아메리카 최남단 파타고니아에 키 3m에 이르는 거인들이 산다는 이야기가 퍼졌다. 단순한 괴담으로 치부되지 않아서, 일부 지도에는 남아메리카 끝자락이 거인들이 사는 곳으로 표기됐다.

파타고니아 거인 전설의 시작은 인류 최초의 세계일주에 나선 페르디난드 마젤란 탐험대다. 마젤란 함대는 1520년 현재의 아르헨티나 남부 산훌리안만에서 원주민들과 만났다. 탐험에 동행한 이탈리아인 안토니오 피가페타는 이들이 놀라울 정도로 컸다고 기록했다. 특히 한 남성에 대해서는 “최장신 탐험대원조차 거인의 허리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고 묘사했다. 마젤란 일행은 이들을 파타곤(Patagon)이라고 불렀고, 여기에서 파타고니아라는 지명이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파타고니아 거인 전설의 시작은 마젤란 탐험대다. <사진=인공지능(챗GPT) 생성 이미지>

유럽으로 건너간 이야기는 더욱 커졌다. 후대 항해자들은 파타고니아에서 키 3m가 넘는 사람을 봤다고 주장했다. 거대한 시신을 발견했다는 목격담도 나왔다. 16~17세기 일부 지도 제작자들은 남아메리카 남단을 거인들의 지역(Regio Gigantum)이라고 표시했다.

파타고니아 거인 전설은 생각보다 오래 지속됐다. 마젤란 탐험대가 파타고니아에 도착하고 200년 이상 지난 1760년대에도 거인 이야기는 건재했다. 영국 해군 존 바이런이 이곳을 방문한 뒤 키가 무려 9피트(약 274㎝)에 달하는 사람들이 산다는 소문이 다시 유럽을 달궜다.

그런데 파타고니아를 직접 찾는 사람이 늘고 기록이 구체적으로 남기 시작하면서 이상한 변화가 나타났다. 거인들의 키가 점점 작아졌다. 3m를 넘는다던 사람들은 2.7m가 됐고, 실제 항해 기록에서는 190㎝대 장신이 등장했다. 여전히 당시 기준으로는 엄청나게 큰 사람들이었지만 전설 속 거인과는 거리가 멀었다.

파타고니아 거인들이 사는 곳을 그려넣은 지도 <사진=인공지능(챗GPT) 생성 이미지>

사실 의심은 훨씬 전부터 있었다. 영국 탐험가 프랜시스 드레이크의 항해를 정리한 1628년 기록은 파타고니아 사람들이 유럽인보다 크고 건장한 것은 맞지만 마젤란 탐험대가 전한 것처럼 거대한 사람들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유럽인들이 250년 가까이 이야기한 거인들은 대체 누구였을까. 오늘날 그 정체로 지목되는 것은 파타고니아 원주민, 특히 테우엘체(Tehuelche) 사람들이다. 이들은 실제로 당시 유럽인들이 보기에 상당한 장신이었다. 19세기 아르헨티나 탐험가 라몬 리스타가 직접 측정한 테우엘체 남성 7명의 평균 신장은 약 185㎝였다. 다른 조사에서는 이보다 낮은 수치도 나와 집단 전체가 이 정도였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따라서 최초의 유럽인들이 받은 충격까지 모두 허구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자신들보다 훨씬 크고 건장한 원주민을 처음 만난 데다 동물 가죽으로 만든 두꺼운 옷과 낯선 생활방식까지 더해졌기 때문이다.

파타고니아 거인 이야기는 시간이 갈수록 부풀려졌다. 그러다가 진짜 목격자들이 많아지면서 거인들의 키는 점점 작아졌다. <사진=인공지능(챗GPT) 생성 이미지>

문제는 키가 큰 원주민 이야기가 전해질수록 부풀려져 거인이 된 점이다. 거인은 다시 항해기에 등장했고, 여기에 적힌 이야기는 책과 지도를 통해 사실처럼 유럽에 퍼졌다. 이미 17세기에 과장이라는 지적이 나왔지만 남미 끝자락에 거인이 산다는 이야기는 18세기까지 살아남았다.

파타고니아 거인 이야기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더 많이 찾아가고, 자세히 관찰하고, 실제 키를 재면서 조금씩 작아졌다. 3m를 넘나들던 전설의 거인이 185㎝ 안팎의 인간으로 돌아오는 데 약 250년이 걸렸다.

김한별 기자 khstar@sputnik.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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