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 건축의 정수로 꼽히는 파르테논 신전에 적용됐다고 알려진 유명한 착시 보정이 실은 존재하지 않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이야기일 가능성이 제기됐다. 어린이 과학·교양서에도 소개될 만큼 널리 알려진 상식을 뒤집는 연구에 많은 관심이 모였다.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수리연구소 알랭 고리엘리 교수 연구팀은 파르테논 신전의 이른바 광학적 보정(optical corrections)을 수학적으로 분석한 연구 결과를 국제 학술지 왕립학회 오픈 사이언스 9월 호에 발표했다.
기원전 5세기 아테네 아크로폴리스에 세워진 파르테논 신전에는 얼핏 알아채기 힘든 여러 곡선이 존재한다. 대표적인 것이 기둥이 올라선 기단이다. 완전히 평평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중앙부가 양쪽 끝보다 약 6㎝ 높다.
오랫동안 이는 인간의 착시를 보정하기 위한 고대 그리스 건축가들의 치밀한 계산으로 여겨졌다. 긴 수평선은 가운데가 처진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기단을 반대로 살짝 솟게 만들어 사람 눈에는 똑바로 보이도록 했다는 것이다.
파르테논 신전의 기둥도 완벽한 직선이 아니라 가운데가 미세하게 부풀어 있다. 엔타시스(entasis)라고 부르는 이 구조 역시 곧은 기둥의 가운데가 오목해 보이는 착시를 상쇄하기 위한 장치라는 설명이 오래전부터 이어졌다.
다만 보정할 착시가 실존하지 않는다는 반론도 많았다. 많은 학자들이 파르테논 신전의 착시 보정에 대해 연구했지만 확답을 내기는 어려웠다. 이에 연구팀은 신전을 둘러싼 최소 12가지 광학적 보정을 분석하기 위해 실제 측정값, 시지각 정보, 수학적 모델 분석값을 교차 검토했다. 그 결과, 착시 자체를 뒷받침하는 실험적 증거가 없거나 효과가 너무 작다는 결론을 내렸다.
알랭 고리엘리 교수는 “가령 파르테논 기둥 때문에 수평선이 휘어 보인다는 설명에는 평행한 선이 주변 선의 각도 때문에 굽어 보이는 헤링 착시(hering illusion)가 종종 동원됐다”며 “헤링 착시는 선들이 날카로운 각도로 교차할 때 강하게 나타난다. 거의 수직으로 늘어선 파르테논 기둥은 이런 조건과 거리가 멀다”고 지적했다.
이어 “파르테논 신전의 기둥 중앙부 팽창은 약 18㎜에 불과하다”며 “우리 분석에 따르면 일반적인 거리에서 신전을 바라볼 경우 사람이 이 정도 차이를 시각적으로 알아채기는 매우 어렵다”고 덧붙였다.
연구팀은 애당초 착시 보정이라는 설명의 출발점을 의심했다. 파르테논 신전 건축가들이 남긴 설계 원리상 착시 보정이 실존할 가능성이 낮다는 게 연구팀 입장이다. 신전이 완성되고 400년이 지난 기원전 1세기 활동한 로마 건축가 비트루비우스가 기단의 곡률 등을 시각적 문제를 바로잡기 위한 장치로 설명한 것이 착시 보정으로 굳어졌다고 연구팀은 추측했다.
실제로 비트루비우스의 영향으로 파르테논 신전은 대표적인 과학·건축 상식이 됐다. 전문 건축 서적은 물론 각종 교양 콘텐츠와 어린이를 위한 과학·교양서에도 고대 그리스인이 인간의 눈을 속이는 착시까지 계산해 신전을 설계했다는 이야기가 등장한다.
연구팀은 기단의 완만한 곡률이 빗물이 고이는 것을 막는 배수 장치일 뿐이라고 봤다. 기둥의 엔타시스 역시 착시 보정이 아니라 당시 사람들이 자연스럽고 아름답다고 느낀 미학적 선택일 가능성을 제시했다.
알랭 고리엘리 교수는 “우리 연구는 파르테논 신전이 실제로 정교하게 만들어졌다는 사실이나 곡선 자체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며 “곡선의 목적이 착시 보정이라는 2000년 넘는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가 없다는 것이 이번 조사의 결론”이라고 말했다.
흥미로운 점은, 명확한 증거가 없는 파르테논 착시 보정을 주요 인공지능(AI) 챗봇들도 언급한다는 사실이다. 연구팀이 건축의 광학적 보정에 관해 질문한 결과 AI 챗봇들은 하나같이 파르테논 신전의 곡선이 착시를 바로잡기 위한 것이라는 기존 설명을 내놨다. 수천 년간 반복된 지식이 현대 AI의 답변에도 그대로 반영된 결과다.
알랭 고리엘리 교수는 “후대 사람들이 고대 그리스 문명을 지나치게 완벽하고 과학적인 존재로 바라본 것이 이런 설명이 오랫동안 살아남은 이유 중 하나일 것”이라며 “파르테논 신전의 착시가 정말 궁금한 사람들은 직접 도시를 걸으며 건축물을 바라보는 것이 좋다”고 전했다.
박지연 기자 yeon@sputnik.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