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송 멸망 부추긴 장기 가뭄의 흔적 발견
1127년 금나라의 침공으로 멸망한 중국 북송 왕조가 극심한 가뭄으로 이미 크게 약화했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약 1000년 전 관을 만드는 데 사용된 목재에서 수십 년에 걸친 가뭄의 흔적이 발견됐다.
중국 푸젠사범대학과 난징사범대학 등이 참여한 국제 연구팀은 이런 내용을 담은 조사 보고서를 13일 국제 학술지 npj 고생태계(npj Palaeoecosystems)에 게재했다.
연구팀은 중국 장쑤성 창저우 일대에서 출토된 목관 5점의 나이테를 분석했다. 나이테에 남은 산소 동위원소 비율을 측정하면 나무가 성장하던 시기의 강수량과 습도 변화를 추정할 수 있다.
총 954차례의 측정을 통해 복원한 346년간의 기후 기록은 흥미로웠다. 북송 말기인 1080년대부터 건조화가 시작되고 1101년 이후 가뭄이 더욱 심해진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12세기 전반의 가뭄은 분석 기간 중 가장 심각하고 오래 지속된 건조기로 파악됐다.
푸젠사범대 쩌펑메이 연구원은 “이러한 기후변화는 당시 사회적 혼란을 부추겼을 가능성이 충분하다”며 “북송의 주요 곡창지대였던 양쯔강 하류에서 농경지 면적이 줄고 쌀값이 상승한 시기가 가뭄과 겹쳤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여기에 황실 정원 조성을 위해 진귀한 꽃과 나무, 바위 등을 징발하는 화석강 사업까지 추진되면서 농민들 부담이 커졌다”며 “가뭄으로 악화한 경제 상황과 과중한 세금·노역이 1120년 발생한 대규모 농민 봉기 방랍의 난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방랍의 난 진압에는 막대한 병력과 재정이 투입됐다. 이로 인해 북송의 국력이 약화했고, 북방에서 세력을 확장하던 금나라에 대응할 능력도 떨어졌다고 연구팀은 분석했다. 북송은 1127년 금나라에 수도 개봉을 빼앗기며 멸망했다.
다만 연구팀은 가뭄을 송나라 멸망의 유일한 원인으로 지목하지는 않았다. 정치적 갈등과 재정 위기, 외부 침공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가운데 장기간의 가뭄이 왕조의 위기를 증폭했다는 입장이다.
이번 연구는 고대 목재의 화학적 기록을 통해 기후변화와 역사적 사건의 연관성을 추적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학계는 평가했다. 연구팀은 기후 위기가 사회적 재난으로 이어지는 정도는 당시의 정치·경제 구조와 대응 능력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준 성과라고 강조했다.
박지연 기자 yeon@sputnik.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