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 브레스 감독의 2004년 영화 '나비효과(The Butterfly Effect)'는 현재 상황을 고치기 위해 수차례 과거로 시간여행을 떠나는 남자의 이야기다. 우연히 특수능력을 얻어 시간여행이 가능해진 에반(에쉬튼 커쳐)은 케일과 토미, 레니  등 동네 친구들과 얽힌 과거를 고쳐 가장 나은 자신을 만들려고 애쓴다. 하지만 시간여행을 떠날수록 현실은 꼬이고, 결국 최악의 상황에 몰리면서 '과거를 인위적으로 바꾸려는 노력은 쓸모없다'는 교훈을 남긴다.

영화의 제목 '나비효과'는 미국 수학자 겸 기상학자 에드워드 노턴 로렌즈가 1961년 처음 사용했다. 날씨가 워낙 변화무쌍해 예측하기 힘든 이유를 들어 "브라질 우림의 나비의 날갯짓이 미국 텍사스에 태풍을 일으킬 수 있다"고 언급한 것이 유명해졌다. 예측하지 못한 작은 원인이 엄청난 결과와 연결될 수 있다는 의미로 종종 사용되는 용어다. 참고로 로렌즈는 이를 바탕으로 카오스 이론을 창시했다.   

시간여행을 다룬 영화 '나비효과'의 한 장면 <사진=영화 '나비효과' 스틸>

이 나비효과와 반드시 결부되는 이야깃거리가 시간여행이다. 지금껏 숱한 영화와 드라마, 책에 애용된 단골소재이기도 하다. 당장 영화만 따져도 1980년대 히트한 '백 투 더 퓨처'나 '엑설런트 어드벤쳐'를 시작으로 '시간여행자의 아내' '어바웃 타임'을 거쳐 올해 개봉한 'n번째 이별중'이 시간여행을 다뤘다. 

다만 영화와 드라마 속 시간여행과 나비효과가 물리학적으로는 불가능하다는 연구결과가 최근 나왔다. 미국 로스 앨러모스 국립연구소는 세계적인 물리학회지 '피지컬 리뷰 레터(Physical Review Letters)' 최신호에 실린 논문에서 시간여행 시뮬레이션을 통해 나비효과는 실제 일어나지 않는다고 결론 내렸다. 

이 같은 결과를 낸 주인공은 연구소 소속 물리학자 빈 얀과 니콜라이 시니친이다. 이들은 양자컴퓨터라면 얼마든 과거 시간여행의 시뮬레이션이 가능하며, 시간 흐름에 따른 양자비트의 변화를 통해 나비효과를 실증할 수 있다고 봤다. 

두 사람은 양자비트(큐비트, qubit, quantum bit)에 인위적 얽힘(quantum entanglement, 양자얽힘)을 만들어 나비효과가 벌어지는 지 관찰하기로 했다. 여기 동원된 것이 IBM이 지난해 발표한 양자컴퓨팅 시스템 'Q(퀀텀시스템)'다. 이들은 논리게이트에 일정한 양의 양자비트를 통과시킨 뒤 그 현재와 과거의 변화를 확인했다.

IBM '퀀텀 시스템' <사진=유튜브 'Fortune Magazine' 공식채널 영상 'IBM Unveils Groundbreaking Quantum Computing System I Fortune' 캡처>

여기서 잠깐, 양자컴퓨터를 언급하고 넘어가자. '꿈의 컴퓨터'로 불리는 양자컴퓨터는 요즘 유행하는 인공지능(AI)를 완성할 키로 통한다. 양자역학을 집대성한 리처드 파인만이 구상한 양자컴퓨터는 0과 1만 구분하는 현재 컴퓨터와 달리 0과 1을 동시에 공존시킨다. 현존 최고의 슈퍼 컴퓨터가 몇 만년이 걸릴 연산을 몇 백초면 풀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양자컴퓨터가 상용화되기까지 시일이 걸릴 전망이고 개발도 만만찮은 데다 사기 논란도 여전하다. 현재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 IBM, 인텔 등이 개발에 몰두하고 있으며 IBM의 'Q'는 양자컴퓨터 상용화의 신호탄으로 받아들여진다.

시간여행과 나비효과의 연구와 관련, 시니친은 "만약 양자 세계에 나비효과가 벌어진다면 현재로 돌아왔을 때 부분적으로 변화가 감지돼야 한다"며 "즉, 최초에 발생시킨 양자얽힘과는 다른 패턴이 관찰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시뮬레이션 결과 양자비트에는 어떤 변화도 발견되지 않았다. 두 사람에 따르면 양자비트에 대한 인위적 변화는 시간이 지나도 정확히 그대로였다. 두 사람의 추측에 따르면 양자비트의 얽힌 역사, 즉 변화는 민감한 변수들의 영향을 받지 않고 정확히 미래치를 저장하고 있었다. 시니친은 "과거로의 여행이 복잡할수록 양자비트는 이미 일어난 미래의 정보는 그대로, 아주 확고하개 원래 현재로 돌아가도록 하는 성질이 확인됐다"고 결론 내렸다. 

로스 앨러모스 국립연구소의 이번 실험이 사실이라면, 나중에 과거여행이 실현되더라도 영화 '나비효과'처럼 미래를 바꾸는 것은 좀처럼 불가능하다. "현재에서 미래는 태어난다"<볼테르> 같은 시간 관련 명언들이 괜히 쏟아져 나온 건 아니라는 이야기다.
 
정이안 기자 anglee@sputnik.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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