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특정한 종의 강아지를 선호하는 이유가 뭘까. 외모나 충성심, 지능일 수도 있고 혹은 각자만의 로망이나 라이프 스타일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과학적 연구 결과는 그보다 근본적이며 단순한 대답을 내놓았다. '대중문화의 영향', 즉 단순한 유행 때문이라는 이야기다.

역사적으로 처음 유행을 탄 강아지 품종이 무엇이고 언제 등장했는지는 알 수 없다. 강아지가 인간과 함께 살기 시작한 것은 최소 1만5000년 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랩독(lapdog, lap dog)'이라는 존재는 유행을 일으킨 강아지의 첫 사례로 꼽힌다. 유럽 왕실이나 귀족 초상화에서도 볼 수 있는 이 작은 강아지는 '사람의 무릎(lap)에 편안하게 누울 수 만큼 작고 유순한 개'를 뜻한다. 특정 품종을 지칭하는 말은 아니다.

유전 분석에 따르면 랩독은 사람과 함께 살 수 있는 가장 초기 개의 특정 유형 중 하나다. 2010년 BMC 바이올로지 저널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중동지역에서 1만2000년 전의 작은 개 및 사람 유골이 함께 발견됐다. 이는 개가 길들여진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다.

중국 황실서 키우던 페키니즈 <사진=pixabay>

랩독은 크기와 성향 때문에 사냥이나 인간을 돕는 역할보다 단순히 '애완용'으로만 의미가 있었다. 시대에 따라 사회적 지위의 상징이나 유행에 따른 액세서리 역할을 했다. 이 때문에 여유가 충분한 사람들, 즉 왕실이나 귀족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다.

미국 유전학자 일레인 오스트랜더가 지난해 8월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알려진 가장 오래된 랩독 중 하나는 페키니즈다. 8세기 중국 당나라 화가 중랑의 그림에도 등장하는 페키니즈는 황실에서 사람의 옷소매 안에 들어갈 수 있도록 길러졌으며, 수세기 동안 황실만 소유할 수 있었다. 이와 비슷한 예로는 티베탄 테리어, 라사 압소, 퍼그, 시츄 등이 있다.

랩독이라는 단어는 1576년 영국 의사 존 카이오가 쓴 책(De Canibus Britannicis)에 처음 등장했다. 여기에서 카이오는 랩독의 예로 스페니얼을 들었다. 스페니얼은 당시 영국 귀족들이 기르던 개다.

현대에 들어 랩독은 비숑 프리제, 재패니즈 테리어 및 요크셔 테리어, 재패니즈 친, 말티즈, 포메라니안, 요크셔 테리어, 빠삐용, 치와와, 미니어처 핀셔 등으로 확대됐다.

흥미로운 것은 랩독이 대중적 인기를 얻는 이유다. 브룩클린컬리지 심리학자 스테파노 걸랜더 교수는 1926년에서 2005년 사이에 아메리칸 케널 클럽(American Kennel Club)에 등록된 강아지 데이터를 조사, 특정 견종이 인기를 끈 이유를 밝혀내려고 했다. 아메리칸 케널 클럽은 1884년 미국에서 설립된 애견 협회다.

PLOS ONE 저널에 실린 연구에 따르면 공격성과 훈련 가능성, 건강 및 수명, 행동 특성 등에서 강점을 가진 개들이 사람들의 인기를 얻은 것이 아니다. 걸랜더 교수는 "개의 장점과 대중의 선호도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며 "또 사람들이 선호하는 종도 변동이 무척 심해 단지 유행의 문제라고 결론내렸다"고 말했다.

일례로 미국에서는 퍼그가 1970년대 인기를 끈 뒤 시들해졌고 2000년대 초반 다시 르네상스를 누렸다. 닥스 훈트도 같은 패턴이었다. 이런 주기적인 인기의 변화는 결국 대중문화의 영향으로 분석됐다.

따라서 2014년 이뤄진 연구에서는 개가 등장하는 블록버스터 영화가 어떤 영향을 주는지 조사했다. 걸랜더 교수는 "박스오피스만 봐도 어떤 품종이 인기를 끌었는지 쉽게 예측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예를 들어 디즈니의 1996년 애니메이션 '101마리의 달마시안 개'가 개봉한 뒤 10년간 동종 반려견이 20% 이상 늘어났다. 1943년 러프 콜리가 등장한 영화 '래시 컴 홈'도 유사한 영향을 미쳤다.

'브리저튼'에 등장하는 랩독 <사진=넷플릭스>

넷플릭스의 전 세계 1위 히트작 '브리저튼'에 등장하는 샬럿 왕비의 포메라이언은 영국의 원조 랩독이다. 실제로 샬럿 왕비는 1761년 조지 3세와 결혼할 당시 폴란드 포메라니아 출신의 강아지를 영국으로 데려왔다. 이후 샬럿 왕비의 반려견 사랑은 왕실의 전통이 됐다. 아들인 조지 4세도 포메라이언을 키웠을 뿐더러 빅토리아 여왕은 닥스 훈트와 퍼그까지 추가했다.

가장 유명한 영국 왕실의 랩독은 '시저'라는 작은 테리어였다. 시저는 1910년 에드워드 7세의 장례 행렬에서 모든 왕실 사람들을 제치고 가장 앞쪽에 자리잡을 정도였다. 그 때문에 에드워드 8세에 이르러서는 랩독의 위세가 어마어마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영국의 왕실 논평가 리처드 피츠윌리엄스는 "당시 왕실 랩독들은 금색 까르띠에 리드줄에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하고 은 그릇과 벨벳 쿠션을 사용했다"고 밝혔다.

영국이 '반려견의 천국'이 된 것은 다 이런 이유에서다. 대중문화가 발전하지 않았던 과거, 왕실의 일거수일투족이 국민적 관심사였던 사회적 분위기도 분명 한 몫을 했다.

한편 랩독은 '워치독(watch dog, 감시견)'의 반대말로, 권력의 개 노릇을 하는 언론을 비꼬는 말로도 쓰인다.

채유진 기자 eugene@sputnik.kr

⇨스푸트니크 네이버포스트 바로가기
⇨스푸트니크 유튜브 채널 바로가기

⇨스푸트니크 네이버포스트 바로가기
⇨스푸트니크 유튜브 채널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