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상의 수많은 포유류를 보면 체모의 형태가 제각각이다. 일상을 함께 하는 반려동물처럼 풍성한 털을 가진 종이 있는가 하면, 고래나 코끼리 등 털을 대부분 버린 종도 많다. 인간의 경우 머리나 겨드랑이 등 신체 일부분만 체모를 가졌다. 같은 영장목인 원숭이가 풍성한 체모를 형성하는 것과는 비교된다.

체모는 포유류의 특징으로, 체온 유지와 피부 보호 등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일부 동물은 털을 센서처럼 사용해 먹이를 탐지하거나 천적의 낌새를 감지한다.

생물학자들은 모든 포유류 조상들이 털을 가졌다고 본다. 진화 과정에서 어떤 이유로 털을 버린 종이 있는가 하면, 보다 발달시킨 동물도 있다. 이런 점에서 체모는 포유류의 진화를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요소다.

인간과 같은 영장목인 원숭이는 풍성한 체모를 갖고 있다. <사진=pixabay>

고래나 돌고래, 듀공, 매너티 등 바다 포유류는 털이 거의 없다. 이런 동물들은 체모가 가급적 적어야 바다에서 움직이기 편해 털을 대부분 퇴화시켰다. 덥고 습한 지역에 사는 코끼리나 코뿔소, 하마 등 대형 포유류 역시 털이 없는 편이 체온 유지에 유리하다.

이처럼 각 포유류는 처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털을 버리기도 하고 더욱 풍성하게 발달시켰다. 외부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는 방향으로 각 동물이 진화하면서 털의 유무가 결정됐다는 게 학계 중론이다. 

이런 점에서 사람도 환경 변화에 따라 체모의 형태가 변할지 모를 일이다. 영화 '투모로우'처럼 기후 재난으로 지구가 다시 빙하기에 빠질 경우, 인류가 길고 촘촘한 체모를 온몸에 두르지 말라는 법은 없다.

사람은 환경에 적응하면서 털을 부분적으로 버린 포유류다. 머리, 겨드랑이, 수염 등 주요 부위에 나는 털은 진화학적으로 모두 쓸모가 있다. <사진=pixabay>

사람의 체모가 현재와 달리 풍성하게 변화할 가능성은 과학적으로 이미 입증됐다. 미국 피츠버그대학교 인류유전학 연구팀은 지난해 11월 낸 논문에서 사람의 털은 필요에 의해 부분적으로 퇴화했으며, 언제든 다시 체모를 발달시킬 유전자를 갖고 있다고 밝혔다. 

포유류 62종이 가진 총 1만9149개의 유전자와 단백질 정보가 없는 34만3598개의 비코드 DNA(정크 DNA) 영역을 분석한 연구팀은 털을 버린 포유류의 진화를 설명할 유전자를 특정했다. 또한 지구상의 포유류는 지금까지 9회에 걸쳐 털을 버리는 일종의 전략을 택한 사실도 알아냈다. 결론적으로 연구팀은 인간이 긴 체모를 기를 유전자 스위치를 현재 끈 상태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학자들은 종마다 다른 포유류의 체모 연구가 인간의 탈모나 빈모 치료와 연결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또한 유전자 변화 속도를 비교하는 접근법을 통해 암 등 난치병의 예방이나 수명 연장, 기타 건강에 관한 유전자 영역을 특정하는 연구도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이윤서 기자 lys@sputnik.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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