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동안 클레오파트라 7세의 여동생 것으로 여겨졌던 두개골이 실은 소년의 것임이 판명됐다. 영화와 뮤지컬 등 문화 콘텐츠로 자주 소개되는 클레오파트라는 고대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최후의 파라오다.
오스트리아 빈대학교 고고학자 게르하르트 웨버 교수 연구팀은 최근 국제 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Scientific Reports)에 이런 내용의 조사 보고서를 공개했다.
고고학계는 지난 100년에 걸쳐 이 두개골이 클레오파트라의 동생 아르시노에 4세의 것으로 생각했다. 연구팀은 1929년 튀르키예 고대 도시유적 에페소스의 석관에서 나온 이 두개골을 CT 스캐너로 들여다보는 한편, DNA 분석을 새로 실시했다.

그 결과 두개골의 주인은 여성이 아닌 11세가량의 소년으로 확인됐다. 생전 희귀한 유전질환에 시달렸을 가능성이 떠올랐고, 두개골 전체가 비대칭인 데다 치아의 이상도 파악됐다.
웨버 교수는 "왜 소년의 두개골이 호화 대리석 관에 안치됐는지 모르겠다"며 "대리석 관은 에페소스 안에서도 그리스 신화의 아르테미스 여신을 기린 신전에 자리해 망자의 위세가 대단함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석관 주변에 다른 유물이나 비문은 없었지만 학자들은 당연히 고귀한 인물로 추측했고, 여기 오래 머문 아르시노에 4세라고 여겼지만 뒤늦게 정체가 드러났다"고 덧붙였다.

아르시노에 4세는 고대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제14대 파라오다. 프톨레마이오스 12세의 딸이자 클레오파트라의 이복동생이다. 미모와 지략을 겸비한 클레오파트라는 기원전 48~기원전 47년 알렉산드리아 포위전에서 로마 말기 정무관 카이사르와 동맹을 맺고 프톨레마이오스 12세와 아르시노에 4세를 굴복시켰다.
아르시노에 4세는 이후 에페소스의 아르테미스 신전으로 피신했다. 기원전 41년까지 조용히 지내다가 클레오파트라의 부탁으로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에 의해 22세 나이로 처형됐다.
웨버 교수는 "이러한 역사적 사실 때문에 사치스러운 석관에 안치된 유골이 아르시노에 4세의 것이라는 가설이 오래 지속됐다"며 "발달된 DNA 분석 기술로 두개골에서 Y염색체를 발견하면서 남자의 것임이 드러났다"고 설명했다.

교수는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결과 유골의 주인이 사망한 시기는 아르시노에 4세가 처형된 때와 모순되지 않지만 문제는 유골의 발달 상태"라며 "아무래도 이 인물은 11~14세로, 22세에 사망한 아르시노에 4세보다 훨씬 젊다"고 전했다.
연구팀은 두개골 분석 결과 소년이 5만 명 중 1명 꼴로 관찰되는 유전성 질환 트리처 콜린스 증후군을 앓았다고 추측했다. 신체발달에 문제가 있는 소년이 에페소스 유적에서도 상징적인 신전 내부에 안치된 이유는 아직 불명확하다.
정이안 기자 anglee@sputnik.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