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혈오징어의 게놈 배열이 모두 해독되면서 문어의 기원이 처음으로 밝혀졌다. 심해 유기물을 섭취하는 흡혈오징어는 중생대 두족류 벨렘나이트와 닮았고, 문어와 오징어의 특성을 모두 갖춰 살아있는 화석으로 통한다.
일본과 오스트리아 공동 연구팀은 흡혈오징어의 전체 게놈 해석 결과를 3일 공식 발표했다. 이들의 연구 성과는 국제 학술지 아이사이언스(iScience) 최신호에도 소개됐다.
연구팀은 약 600~900m 심해에 서식하는 두족류 흡혈오징어의 전체 게놈 해석에 매달려 왔다. 오징어나 문어의 공통 조상으로 생각되는 이 생물은 어두운 계열의 체색에 보라색으로 빛나는 눈, 망토를 닮은 다리 사이의 막, 4개의 발광기가 특징이다.
시마네대학교 수생생물학자 노구치 히데키 박사는 “흡혈오징어는 몸의 구조가 갑오징어류와 비슷하면서도 다리는 문어처럼 8개”라며 “문어와 오징어가 분화하기 직전 조상을 계승한 현생종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라고 전했다.
이어 “여러모로 수수께끼가 많은 흡혈오징어는 그간 전체 게놈이 해독된 적이 없다”며 “일본 도카이대학교의 해양 실습선 호쿠토가 스루가 만에서 우연히 채취한 표본을 국립유전학연구소의 DNA 시퀀스 해독기로 분석했다”고 덧붙였다.
이 과정에서 흡혈오징어의 게놈 크기는 무려 11~14Gb(기가베이스, 1Gb=염기 10억개), 즉 110억~140억 염기쌍으로 확인됐다. 이는 인간 게놈(3Gb)의 대략 4배로, 지금까지 해석된 무척추동물의 게놈 중에서 최대급이다.
두족류의 전체 게놈 크기를 비교해도 흡혈오징어를 대적할 것이 없다. 미국산 롱핀 오징어와 창꼴뚜기가 대략 4.4Gb이고, 두족류 중 최대라는 갑오징어도 5.5Gb다. 문어의 게놈은 더욱 작아 캘리포니아쌍점문어 2.2Gb, 낙지 2.6Gb, 참문어 2.7Gb 정도다.
노구치 박사는 “흥미롭게도 흡혈오징어 게놈의 약 62%는 똑같은 DNA가 반복되는 배열”이라며 “새로운 코드 배열을 추가하지 않고 게놈 크기가 부풀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고 설명했다.
박사는 “이번 연구를 통해 진화 초기 단계에서는 문어도 오징어와 같은 염색체 구조를 가진 사실이 밝혀졌다”며 “문어의 동료는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염색체 융합과 재편성이 진행됐지만 흡혈오징어는 게놈 팽창에도 염색체 변화가 거의 없다”고 언급했다.
학계는 연구팀의 성과가 문어와 오징어의 공통 조상이 생각보다 오징어와 유사하다는 사실을 알려줬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아울러 이번 연구는 문어가 오징어와 같은 조상으로부터 진화했음을 보여주는 지금까지 가장 명확한 증거라고 평가했다.
이윤서 기자 lys@sputnik.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