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쿤(미국너구리)은 보상이 없어도 흥미를 느낀 퍼즐을 계속해서 푼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학계는 너구리과 동물의 뛰어난 지능을 보여준 사례이자, 라쿤이 스스로 가축화를 선택한 증거라고 평가했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교(UBC) 동물행동학 연구팀은 라쿤이 보상이 끊어진 뒤에도 재미를 느낀 퍼즐을 반복해 도전하는 상황을 포착했다고 13일 밝혔다. 이번 조사 성과는 국제 동물행동학회지 Animal Behaviour 최신호에도 실렸다.

연구팀은 미국 콜로라도 동물연구 시설에서 사육 중인 라쿤을 대상으로 총 9가지 입구가 달린 투명한 케이지를 푸는 실험을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연구팀은 라쿤이 먹이 보상이 없어도 순수하게 재미와 호기심만으로 퍼즐을 계속 푸는 것을 파악했다.

공격성이 줄어들고 외모도 동글동글 귀엽게 변해가는 미국너구리(라쿤) <사진=pixabay>

연구팀은 여닫이, 슬라이드 등 9가지 유형의 문이 부착된 투명 플라스틱 박스 중 하나에만 마시멜로를 넣고 라쿤이 20분 안에 꺼내 먹을 수 있는지 살폈다.

그 결과, 라쿤은 마시멜로를 꺼내 먹은 뒤 추가 보상이 없음에도 나머지 박스를 열려고 계속 도전했다. 이리저리 박스를 둘러보고 문을 열기 위해 빤히 쳐다보기도 했다.

UBC 한나 그리블링 연구원은 "라쿤은 상황에 맞게 정보를 수집하고 문을 어떻게 열 것인지 궁리했다"며 "퍼즐이 쉬울 때는 일부러 순서를 바꾸는 등, 호기심을 충족하기 위한 행동이 포착됐다"고 말했다.

라쿤에 제시된 박스는 총 9개 유형으로 문을 여는 난도가 각각 달랐다. 라쿤은 이 과정에서 보상이 없어도 과제 수행에 흥미를 보였다. <사진=UBC 공식 홈페이지>

이어 "반대로 퍼즐이 어려워지면 한 번 성공한 확실한 방법을 우선적으로 사용해 마시멜로를 꺼내 먹었다"며 "이는 가격이 싸면 새로운 메뉴를 시도하지만, 비싼 요리라면 실수를 피하려 검증된 요리를 주문하는 인간 심리와 비슷하다"고 분석했다.

즉 연구팀은 라쿤이 비용과 위험이 낮을 때는 호기심을 우선시하고, 리스크가 커지면 안전한 방법을 택하는 등 인간과 같은 고도의 의사결정 능력을 가졌다고 추측했다. 이런 행동은 복잡한 도시에서 살아가기 위해 체득한 라쿤만의 생존 전략이라는 게 연구팀의 결론이다.

한나 그리블링 연구원은 "라쿤이 도시에서 번성하는 배경에는 식욕을 넘어선 강한 호기심과 이를 실행에 옮기는 신체적 특성이 있다"며 "라쿤은 원래 북미대륙 토종이지만 인간과 가까워지면서 생태가 급변했다. 공격성이 줄고 가축화와 유사한 징후가 관찰된다는 보고가 최근 꾸준하다"고 전했다.

미국 민가에 들어와 잠을 자는 라쿤. 인간 사회에 적응하면서 경계심도 많이 줄었다. <사진=pixabay>

실제로 지난해 11월 미국 아칸소대학교 연구팀은 북미의 라쿤들이 인간과 살기 위해 자발적 가축화를 택했다는 조사 보고서를 냈다. 대도시 인근의 라쿤은 코끝이 짧아지고 얼굴이 동글동글 유순하게 변한 데다 공격성도 덜해졌다는 것을 증거로 들었다.

일부 학자들은 라쿤의 이런 변화가 인간과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뚜렷한 사회 적응이라고 본다. 늑대가 안락한 삶을 위해 야생의 거친 성질을 없애면서 반려동물을 대표하는 개로 변모한 것과 마찬가지라는 이야기다. 

한나 그리블링 연구원은 "우리 실험은 사육 중인 개체를 대상으로 진행했지만, 선행연구에서 야생 개체도 동일하게 높은 문제 해결 능력을 가졌음이 확인됐다"며 "이번 성과는 지능이 뛰어난 야생동물이 인간과 어떤 방식으로 공존하는지 연구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정이안 기자 anglee@sputnik.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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