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리가 깨진 케아앵무가 무리의 정점에 올랐다. 앵무새는 다른 조류와 마찬가지로 부리가 생존에 직결되는 기관인 점에서 많은 학자가 이번 현상에 주목했다.

뉴질랜드 캔터베리대학교 동물행동학자 알렉산더 그래브햄 교수 연구팀은 20일 조사 보고서를 내고 윌로뱅크야생동물보호구역에 서식하는 수컷 케아앵무 브루스의 특별한 사연을 전했다. 뉴질랜드 고산지대에 서식하는 케아앵무는 몸길이 약 50㎝에 지능이 아주 뛰어나며, 현재 멸종위기종으로 보호되고 있다.

연구팀이 10년 넘게 관찰조사한 브루스는 소중한 부리의 윗부분이 결손됐다. 무기이자 먹이활동의 주된 도구인 부리의 이상은 큰 손실로, 연구팀은 브루스의 부상 당시 얼마 못 가 도태될 것으로 우려했다.

다만 브루스는 다른 어떤 개체도 쓰지 않는 독자적인 싸움 방법을 고안해, 놀랍게도 무리의 우두머리가 됐다. 학계가 놀란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에도 소개됐다.

윌로뱅크야생동물보호구역에 서식 중인 수컷 케아앵무 브루스 <사진=윌로뱅크야생동물보호구역 공식 페이스북>

알렉산더 교수는 "브루스는 2013년, 아직 새끼였을 때 이 보호구역에 왔지만 이미 윗부리가 없었다"며 "사고였는지, 아니면 포식자에게 습격을 당했는지, 혹은 동료와 싸움으로 잃은 것인지 확실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어 "새의 부리는 사람의 손과 같은 기관으로, 윗부리가 결손되면 먹이를 집어먹거나 깨뜨리거나 찢는 등 기본 동작조차 어려워진다"며 "특히 깃털 손질을 제대로 못해 보온·방수 능력이 떨어지고, 감염 위험도 높아진다"고 덧붙였다.

이런 이유로 연구팀은 브루스가 곧 죽고나 무리에서 쫓겨날 것으로 봤다. 다만 브루스는 노출된 아래 부리를 창처럼 내밀어 다른 수컷을 제압했고, 먹이활동을 했다. 브루스는 놀랍게도 케아앵무 무리에서 강자로 떠올랐다. 앵

연구팀은 브루스의 행동에 관심을 갖고, 싸움이나 먹이활동, 타 개체와 교류, 깃털 손질 방법 등을 관찰했다. 브루스가 속한 무리는 수컷 9마리, 암컷 3마리인데, 지금껏 기록된 공격성을 띠는 접촉은 227회였다.

조류의 부리는 사람의 손과 같아서 먹이활동, 싸움 등 기본적인 생활에 반드시 필요하다. <사진=알렉산더 그래브햄>

알렉산더 교수는 "각 개체의 공격적 접촉 227회 중 162회가 수컷 사이의 싸움이었다. 브루스는 총 36회의 경쟁에 참여했으며, 모두 승리했다"며 "심지어 73%는 브루스가 접촉과 동시에 상대를 물러나게 해 싸움이 심해지기 전에 결판이 났다"고 말했다.

교수는 "보통 케아앵무는 싸울 때 서로 격렬하게 물고 뜯지만 브루스는 윗부리가 없기 때문에 그 방법을 사용할 수 없다"며 "브루스는 남아 있는 아래 부리로 상대를 찔렀다. 근거리에서는 목을 뻗어 상대를 찌르고, 원거리에서는 달리거나 뛰어오르며 힘을 줘 공격했다"고 전했다.

이란 행동을 동물행동학에서는 조스팅(jousting, 창 시합)이라고 부른다. 이 공격 방법이 케아앵무에서 확인된 전례는 없다. 브루스는 윗부리 대신 아랫부리를 적극 활용한 새로운 공격 방법을 고안한 셈이다.

케아앵무의 윗부리는 아랫부리 위에 둥글게 말듯이 덮는다. 이 부분은 사실 상대를 찔러도 타격감이 적지만, 그 안에 자리하는 아랫부리는 날카로워 칼처럼 휘두를 수 있다. 브루스는 전방으로 강하게 돌진해 몸으로 부딪히며 상대의 자세를 무너뜨리는 공격까지 구사했다.

연구팀에 따르면, 브루스는 무리 중 유일하게 다른 수컷에게 깃털 손질을 받는 개체다. 또한 브루스의 배설물에 포함된 스트레스 관련 호르몬(코르티코스테론) 수치는 무리 중에서 가장 낮았다. 보통은 지위를 유지하는 개체일수록 강한 스트레스를 받는데, 브루스는 이마저 비켜가 학자들의 관심이 집중됐다.

알렉산더 교수는 "브루스의 사례는 생물에 큰 불리함이 되는 신체적 악조건이 새로운 행동을 만들고, 오히려 사회적 지위 획득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보여줬다"며 "스스로 고민해 상황을 바꾸고 무리 안에서 우위를 차지한 브루스는 동물의 적응 능력 범위가 넓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이윤서 기자 lys@sputnik.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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