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이 정말 수의 개념을 이해한다는 연구 결과가 또 나왔다. 벌은 뇌가 상당히 작고 뉴런이 약 100만 개에 불과하지만 단순한 반사 행동을 넘어 학습과 기억, 추론이 가능하고 수학적 개념까지 이해한다는 사실이 밝혀져 왔다.
호주 모내시대학교와 이탈리아 트렌토대학교 공동 연구팀은 지난달 말 발간한 영국왕립학회 생물학회지 Proceedings of the Royal Society B: Biological Sciences에 조사 보고서를 내고 꿀벌의 수 인식 능력이 상당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연구팀은 '맞춤 자극: 수치 인지 연구를 위한 생물학적 접근 방식(Stimuli that fit: a biology-aligned approach to numerical cognition research)' 논문에서 꿀벌이 수의 개념을 이해하는 것은 시각 패턴에 반응하는 수준이 아니며, 수 자체를 이해한다고 주장했다.
꿀벌의 수학적 능력은 학자들 사이에서 오랫동안 주목을 받은 주제다. 그 작은 머리 안에 생각보다 높은 수준의 인지 능력이 내재한 사실이 여러 실험에서 밝혀졌지만, 수의 개념을 이해하기보다 시각적 반응이라는 반론도 만만찮게 제기됐다.
연구팀은 과거 꿀벌 실험에 사용된 영상을 벌의 눈에 보이는 형태로 다시 분석했다. 꿀벌의 눈은 인간과 전혀 다른 복안이라는 구조로, 많은 작은 눈들이 모여 하나의 상을 이룬다. 색이 보이는 방식과 형태를 파악하는 방식이 인간과는 크게 달라서, 인간과 꿀벌이 각각 구분하는 이미지는 형태가 상당히 다르다.
연구팀은 꿀벌이 꽃잎 수를 기억함으로써 꿀이 많은 꽃과 그렇지 않은 꽃을 구별한다는 전제를 세우고 실험에 나섰다. 방사형으로 피는 꽃은 3장, 5장, 6장, 7장 등 일정한 꽃잎을 갖는다. 꿀벌은 꽃의 꿀을 둥지로 운반하는 중요한 역할을 맡으며, 효율적으로 영양분을 모으기 위해 꿀이 많은 꽃을 구분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조사를 이끈 트렌토대학교 미르코 자논 연구원은 "꿀벌의 시각 특성에 맞춰 이미지를 다시 촬영했지만, 무늬의 밀도와 외관 차이만으로는 꿀벌의 행동을 설명할 수 없었다"며 "시각적 요인을 제거해도 여전히 꿀벌이 수 자체에 반응하는 경향이 남아 있었다"고 강조했다.
이어 "인간의 뇌신경세포는 1000억 개가 넘지만 꿀벌은 100만 개에 불과하다"며 "그 작은 뇌를 통해 꿀벌은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수의 능력을 획득한 것으로 추측된다"고 말했다.
벌 지능 연구의 출발점은 독일 연구팀이 2017년 소개한 와글 댄스(waggle dance)다. 연구팀은 꿀벌이 동료들에게 꿀과 꽃가루, 수원 등을 알릴 목적으로 8자 모양으로 춤을 춘다고 주장했다. 이 춤은 단순한 신호가 아니라 지도상 좌표에 가까운 정보를 전달하는 체계라고 일부 학자는 본다.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센터(CNRS)는 2010년 연구에서 벌이 얼굴을 알아보는 시각 인지 능력을 가졌다고 전했다. 이 연구는 벌이 단순한 패턴이 아니라, 사람의 얼굴처럼 복잡한 형태를 구별하고 범주화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
벌의 수 개념을 파고든 실험도 더 있다. 호주 디킨대학교 연구팀은 2022년 국제 학술지 Frontiers in Ecology and Evolution에 게재한 논문에서 꿀벌이 홀수와 짝수를 구별하는 능력을 가졌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꿀벌을 A와 B그룹으로 나누고 1~10개의 도형이 그려진 카드를 보여줬다. A그룹의 경우 짝수 카드를 고르면 달콤한 설탕물을 주고, 홀수 카드를 고르면 쓰디쓴 노각나무 수액을 급여했다.
B는 이를 반대로 적용하고 두 그룹을 반복 학습시켰다. 40세트 훈련을 거친 뒤 A그룹 꿀벌들은 80% 넘는 확률로 짝수 카드를 골라냈다. 특이하게도 홀수 카드를 골라야 설탕물을 얻은 B그룹 꿀벌들의 학습 속도가 더 빠르고 정답률도 높았다.
중국 남방의과대학 연구팀은 지난해 학술지 사이언스에 조사 보고서를 내고 벌도 사람처럼 기쁨을 느끼고 이를 동료와 공유한다고 전했다. 연구팀은 뒤영벌 생태를 관찰하는 과정에서 서로 접촉할 수도, 냄새를 맡을 수도 없는데도 동료의 일부 행동을 따라 하는 행동을 파악했고, 이는 시각만으로 감정이 전해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벌이 사람처럼 놀이를 즐긴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영국 퀸메리런던대학교 연구팀은 2022년 동물행동학 저널 애니멀 비헤이비어(Animal Behaviour)에 조사 보고서를 내고 꿀벌이 놀라운 인지 능력을 가졌으며, 사람처럼 놀이를 안다고 소개했다. 연구팀은 서양뒤영벌 생태 관찰 도중 보상이 없는데도 나무공을 갖고 논 점에서 이런 결론을 내렸다.
종합하면, 벌은 와글 댄스 같은 상징적 언어를 구사하고 사람의 얼굴을 인식하며, 0과 같은 수의 개념을 알고 학습과 기억 능력도 갖췄다. 놀이의 개념도 이해하는 벌은 양처럼 집단 지성을 가졌을 가능성도 연구되고 있다.
이윤서 기자 lys@sputnik.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