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인이 즐기는 월드컵은 매 대회 공인구에도 많은 시선이 모인다. 최근 월드컵 공인구는 센서와 데이터 통신 기술을 결합한 첨단 스포츠 장비로 진화했다. 2018 러시아월드컵부터 시작된 전자칩 탑재는 2022 카타르월드컵을 거쳐 2026 북중미월드컵에서 한층 고도화됐다.
2018년 러시아월드컵 공인구 텔스타(Telstar) 18은 월드컵 공인구 역사상 처음으로 근거리무선통신(NFC) 칩을 내장했다. 다만 이 칩은 경기 판정용이 아니라 팬 서비스를 위해 내장했다.
텔스타 18은 스마트폰을 가까이 대면 칩과 통신이 이뤄져 전용 콘텐츠와 증강현실(AR) 기능을 즐길 수 있었다. 축구공이 디지털 기기와 상호작용한 첫 사례였다. NFC 칩 내장, 스마트폰 연동, AR 콘텐츠 제공 등 당시로서는 뛰어난 기능을 자랑했는데, 정작 경기 데이터 수집 기능은 없었기에 텔스타 18은 스마트 축구공의 출발점 정도로 평가됐다.
2022년 카타르월드컵 공인구 알 리흘라(Al Rihla)는 축구공 자체가 판정 시스템의 일부가 된 첫 사례다. 공 중앙에 관성 측정 장치, 즉 IMU 센서가 탑재됐다. 이 센서는 공의 움직임을 초당 500회 측정하고, 그 정보를 국제축구연맹(FIFA)의 비디오 판독 시스템 VAR 운영실로 전송했다.
심판들은 이 데이터를 선수 위치 추적 카메라 정보와 결합해 반자동 오프사이드 판독(SAOT)에 활용했다. 이 시스템 덕분에 언제 공이 선수의 발을 떠났는지 수 밀리초(㎳) 단위로 파악할 수 있게 됐고 오프사이드 판독의 정확도가 크게 올라갔다.
알 리흘라는 축구 경기 판독의 효율성을 끌어올리기 위한 커넥티드 볼 기술(Connected Ball Technology)을 탑재, 최초의 스마트 공인구로 기록됐다. 이때부터 축구공은 단순한 경기 도구를 넘어 심판의 정확한 판정에 결정적 역할을 하는 보조 장비 역할을 수행하게 됐다.
현재 진행 중인 2026 북중미월드컵의 공인구 트리온다(Trionda)는 알 리흘라의 기술을 계승하면서도 정보 산출 기능이 더욱 정교해졌다. FIFA에 따르면 트리온다 역시 커넥티드 볼 기술을 채택했으며 최신형 500Hz(헤르츠) 모션 센서 칩이 내장됐다. 센서는 공의 회전과 가속도, 접촉 여부를 실시간으로 분석해 VAR 판정을 지원한다.
이번 대회에서는 트리온다의 센서 데이터가 득점 여부나 미세한 터치 판정에 적극 활용되고 있다. 지난 15일 벌어진 F조 스웨덴과 튀니지의 경기에서 센서 파형 데이터 판독 결과 심판은 파악하지 못한 득점 직전의 미세한 접촉이 확인됐다.
월드컵 공인구로는 최초로 4패널 열접합 구조를 적용한 트리온다는 최신 모션 센서로 인한 실시간 접촉 감지는 물론, 향상된 비행 안전성과 공기역학 설계로 정확한 판정에 기여하고 있다. FIFA는 가장 진보한 이 월드컵 공인구를 통해 경기 판정 정확도와 경기 데이터 분석 능력이 동시에 올라가 쾌적한 경기 시청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텔스타 18이 팬과 연결되는 NFC 기기였다면, 알 리흘라는 심판을 돕는 데이터 센서로 거듭났다. 트리온다는 실시간 판정 시스템의 핵심 구성 요소로 발전했다. 불과 8년 만에 월드컵 공인구는 단순한 축구공에서 초당 수백 번 데이터를 생성하는 스포츠 IoT 기기로 진화했다. 이제 월드컵의 승패는 선수들의 발끝뿐 아니라 공에 숨은 반도체와 센서 기술에도 의존하는 시대가 됐다.
이윤서 기자 lys@sputnik.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