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 한반도를 덮친 폭염의 위력은 대단했다. 기온은 최고 42.5℃까지 치솟았고 온열질환 사망자도 잇따랐다. 불편을 넘어 점점 공포로 다가오는 폭염. 극단적인 더위에 노출된 사람의 몸속에서는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질까.
폭염에 노출된 인체에서는 살기 위한 혈액 쟁탈전이 벌어진다. 몸은 체온을 낮추려고 피부로 많은 피를 보내고, 그 대가로 장과 신장 등 내부 장기로 향하는 혈류는 줄어든다.
미국 텍사스대학교 사우스웨스턴메디컬센터 크레이그 크랜들 교수 연구팀이 주도한 조사에 따르면, 전신이 고온에 노출되면 평소 분당 약 5ℓ인 심박출량이 12.5ℓ가량까지 증가할 수 있다. 이때 피부에는 분당 7~8ℓ의 혈액이 몰리는 반면 복부 장기로 가는 혈류는 약 40%, 신장 혈류는 15~30% 감소한다.
이런 변화는 체온을 지키기 위한 생존 전략이다. 인체는 피부 가까이 흐르는 혈액을 늘려 몸속 열을 밖으로 내보내고 땀의 증발로 추가 냉각을 시도한다. 문제는 폭염이 길어질수록 심장이 피부와 주요 장기 양쪽에 혈액을 공급하기 위해 더 큰 부담을 떠안는다는 점이다. 탈수까지 겹치면 심장으로 되돌아오는 혈액이 줄면서 심혈관계 부담이 커진다.
장도 위험하다. 혈류가 크게 줄면 장벽을 이루는 세포들이 산소 부족에 시달리고 장벽의 투과성이 높아질 수 있다. 심한 고체온에서는 장내 세균에서 나온 내독소 등이 혈액으로 넘어가 전신 염증반응을 일으킨다. 이 과정이 열사병의 다장기 손상에 관여한다는 연구가 최근 계속됐다.
신장은 혈류 감소와 탈수를 동시에 견뎌야 한다. 땀으로 수분을 잃은 몸은 소변 배출을 줄여 물을 보존하려 하지만, 신장으로 공급되는 혈액 자체가 감소하면서 심한 경우 급성 신장손상 위험이 커진다.
가장 위급한 신호 가운데 하나는 뇌에서 나타난다. 체온 상승이 심해지면 혼란이나 이상행동, 보행 장애, 말이 어눌해지는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단순히 더위에 지친 상태를 넘어 중추신경계 기능이 흔들리고 있다는 경고다.
호주 뉴캐슬대학교 크리스티안 벨러 연구팀은 올해 5월 저널 오브 뉴로피지올로지에 낸 조사 보고서 ‘인간 뇌 온도 조절 이상의 신경생리학(Neurophysiology of brain temperature dysregulation in humans)’에서 뇌 온도가 신경 기능을 좌우하는 중요한 변수라고 강조했다. 연구팀은 뇌 혈류와 대사, 뇌척수액 등이 뇌 온도 유지에 함께 관여하지만 관련 연구는 다른 뇌 생리 분야에 비해 크게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열사병의 영향은 체온이 내려간 뒤에도 완전히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미국 플로리다대학교 연구팀은 심한 운동성 열사병을 겪은 암컷 생쥐의 심장에서 회복 9~14일 뒤 대사 이상과 산화 스트레스, 미세 염증이 나타났다고 2020년 보고했다. 2021년 후속 실험에서는 회복 30일 뒤까지 일부 면역억제 변화와 후성유전학적 흔적이 확인됐다. 두 연구 모두 생쥐 실험이라 사람에게 같은 현상이 나타난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폭염의 위험성은 충분히 알게 해 줬다.
폭염에 맞서는 인체의 전략은 역설적이다. 살아남기 위해 피부로 피를 보내 체온을 낮추지만, 그 시간이 길어질수록 심장은 더 많이 일하고 장과 신장에는 피가 부족해진다. 냉각 능력이 끝내 한계를 넘으면 뇌를 포함한 여러 장기가 동시에 위험해진다. 폭염이 단순히 참기 힘든 더위가 아니라 몸 전체의 혈액 배분을 뒤흔드는 생리적 재난인 이유다.
박지연 기자 yeon@sputnik.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