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실에서 키운 인간의 미니 뇌가 자신이 지나온 시간을 기억했다. 어린 세포와 오래 자란 세포를 한데 섞어 같은 환경에 놓아도 오래된 세포는 이미 거쳐온 발달 단계를 되풀이하지 않고 더 성숙한 신경세포를 빠르게 만들어냈다. 

미국 하버드대학교 파올라 알로타 교수 연구팀이 지난달 낸 조사 보고서 ‘인간 뇌 오가노이드, 수년에 걸친 시간의 흐름을 기록(Human brain organoids record the passage of time over multiple years)’은 인간 대뇌피질 오가노이드를 5년 넘게 배양하고 발달 과정을 관찰한 결과를 담았다.

뇌 오가노이드는 인간 줄기세포를 입체적으로 배양해 뇌 조직의 일부 특징을 재현한 미니 뇌다. 인간의 뇌는 태어난 뒤 오랜 시간에 걸쳐 성숙하지만 살아있는 사람의 뇌 조직을 장기간 직접 관찰하기는 어렵다. 오가노이드는 이런 한계를 보완할 모델로 주목을 받았는데, 기존에는 주로 태아기나 발달 초기 단계의 연구로 제한됐다. 배양된 신경세포를 오랫동안 건강하게 유지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6개월부터 5년까지 장기간 배양한 인간 대뇌피질 오가노이드. 연구팀은 오가노이드가 단순히 생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 인간 뇌와 비슷한 속도로 분자적 발달 단계를 밟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검은 막대는 1㎜ <사진=파울라 알로타>

연구팀은 흥분성 신경세포가 장기간 살아남을 수 있도록 배양 조건을 개선했고, 그 결과 인간 대뇌피질 오가노이드를 5년 이상 유지했다. 더욱이 15일에서 5년까지 서로 다른 시점의 오가노이드 세포를 분석한 결과, 배양 기간이 늘어날수록 실제 인간 뇌의 발달 과정과 비슷한 방향으로 성숙했다.

파올라 알로타 교수는 “DNA 메틸화 등 후성유전학적 변화를 살펴봤더니 오가노이드의 생물학적 나이는 배양 접시에서 보낸 시간과 맞물려 변했다”며 “사람의 뇌에서 나타나는 일부 연령별 변화와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세포가 단순히 시간에 따라 변했는지, 아니면 자신이 지나온 발달 과정을 실제로 기억했는지 시험했다. 배양한 지 15일밖에 되지 않은 어린 신경 전구세포와 약 9~12개월 된 오래된 전구세포를 각각 떼어내 섞은 뒤 하나의 오가노이드로 다시 만들었다. 서로 다른 나이의 세포가 같은 환경에서 같은 신호를 받도록 했다.

6개월과 9개월 된 인간 대뇌피질 오가노이드의 다중전극배열(MEA) 기록. 색깔 점은 전극에서 검출된 신경세포의 자발적 전기활동을 나타내며, 보라색에 가까울수록 발화 빈도가 높다. 특히 신경활동을 유지하도록 조성한 APM 배양액에서는 9개월 오가노이드의 전기활동이 훨씬 활발했다. <사진=파올라 알로타>

결과는 놀라웠다. 어린 세포는 초기 발달 단계의 신경세포를 순서대로 만들어냈지만 오래된 세포는 이미 거친 단계를 처음부터 반복하지 않았다. 대신 훨씬 뒤에 나타나는 종류의 흥분성 신경세포를 빠르게 생성했다. 마치 이전 상황들을 기억하는 듯했다.

파올라 알로타 교수는 “정상적인 발달이라면 2개월 이상 지나야 등장하는 후기 신경세포가 오래된 전구세포에서는 약 2주 만에 나타났다”며 “이는 세포가 자신이 경험한 발달 이력을 분자 수준에 남겼기 때문”이라고 추측했다.

이어 “이른바 시간 기억은 사람이 과거를 떠올리는 의식적 기억과는 다르다”며 “그럼에도 오가노이드의 세포가 자신이 지나온 발달 단계와 생물학적 나이를 내부 변화로 간직한 것은 대단하다”고 강조했다.

동물실험을 대체할 것으로 기대되는 BRBO <사진=존스홉킨스대학교 공식 홈페이지>

이번 연구를 비롯해, 최근 학계에서는 뇌 오가노이드 연구가 점차 주목할 성과를 내고 있다. 미국 인디애나대학교 블루밍턴(IUB) 뇌과학 연구팀은 2023년 실험 보고서를 내고 사람의 뇌 조직을 배양해 제작한 생체 컴퓨터가 제대로 작동했다고 소개했다. 브레이노웨어(Brainoware)로 명명된 이 오가노이드는 아주 정교하고 복잡한 인간의 뇌를 컴퓨터로 구현하기 위해 개발됐다.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연구팀은 혈관이 진짜로 인식할 만큼 발달한 미니 뇌를 2022년 발표해 학계를 놀라게 했다. 미국 존스홉킨스대학교 뇌과학자들은 인간 세포를 배양해 신경조직과 혈관 구조까지 재현한 다영역 뇌 오가노이드(MRBO)를 지난해 선보였다.

파올라 알로타 교수는 “기존 연구가 인간 뇌의 구조나 기능을 얼마나 정교하게 재현할 수 있는지 보여줬다면 이번 연구는 오가노이드가 인간 뇌 특유의 느린 발달 시간까지 재현 가능함을 보여준 점에 의미가 있다”고 언급했다.

김한별 기자 khstar@sputnik.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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