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 년 전 만들어진 진품 도자기를 위조품과 가려내는 데 지구 자기장을 이용하는 기술이 개발됐다. 도자기가 오랜 세월 지자기에 노출되면서 내부에 축적한 미세한 자기 신호를 읽어내는 방식이다.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샌디에이고(UCSD) 스크립스해양연구소 연구팀은 고대 토기와 현대 도자기의 점성잔류자화(VRM)를 비교해 진위를 판별하는 방법을 18일 소개했다. 이번 성과는 이달 3일 자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실렸다.

도자기의 원료 점토에는 자성을 띠는 미세한 광물 입자가 들어 있다. 점토를 가마에서 높은 온도로 구웠다가 식히면 이 입자들은 당시 지자기의 영향을 받아 특정 방향으로 정렬된 자기 신호를 남긴다. 이를 열잔류자화(TRM)라고 한다.

도자기가 얼마나 오래됐는지 지구 자기장을 이용해 알아내는 기술이 개발됐다. <사진=인공지능(챗GPT) 생성 이미지>

문제는 도자기의 자기 기록이 제작 당시 그대로 멈춰 있지 않는다는 점이다. 가마에서 꺼낸 도자기는 방향이 바뀐 채 주변의 지자기에 계속 노출된다. 수백 년, 수천 년이 지나면 처음 기록된 TRM 위에 새로운 자기 성분이 서서히 축적되는데, 이것이 VRM이다.

VRM은 그동안 지자기 연구에서 원래 자기 신호를 분석하는 데 방해가 되는 잡음 취급을 받았다. 연구팀은 이 생각을 뒤집었다. VRM이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된다면 오히려 그 신호의 안정성을 조사해 도자기가 얼마나 오랫동안 존재했는지 판단할 수 있다고 봤다.

연구팀은 컴퓨터 미세자기 시뮬레이션과 실제 도자기 분석을 병행했다. 실험에는 고대 유물임이 확인된 유다왕국 저장용 항아리 15점과 고대 토기 조각 4점, 전통 가마에서 최근 제작한 도자기 6점, 현대 전기가마로 구운 점토 인장 16점, 예루살렘에서 관광기념품으로 판매되는 도자기 4점 등 총 45점이 동원됐다.

연구팀이 진위 판별 실험에 사용한 현대 도자기들. 전통 가마에서 제작한 그릇과 인위적으로 만든 가짜 점토 인장, 예루살렘에서 판매되는 기념품 등이 포함됐다. <사진=PNAS>

각 시료는 50℃부터 단계적으로 가열됐다. 연구팀은 온도가 올라갈수록 자기 신호가 어떻게 사라지는지 측정해 VRM이 제거되는 온도(VRT)를 계산했다. 고대와 현대 도자기의 차이는 뚜렷했는데, 현대에 제작된 시료 26점은 모두 VRM 제거 온도가 112℃보다 낮았다. 반면 고대 시료 19점은 전부 112℃를 넘어야 오래 축적된 VRM이 제거됐다.

112℃라는 기준은 임의로 정한 것은 아니다. 자기 입자의 크기와 형태 등을 반영한 미세자기 모델로 도자기가 지자기에 0.5년, 10년, 100년, 1000년, 2500년 동안 놓였을 때의 변화를 각각 계산했다. 1000년 된 도자기의 시뮬레이션에서 VRM 제거 온도가 약 112℃로 나타났고 실제 고대 및 현대 도자기 실험 결과도 이 경계를 뚜렷하게 갈랐다.

연구팀에 따르면, 진위가 불분명한 점토 유물의 VRM 제거 온도가 112℃를 넘는다면 1000년 이상 된 유물일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이 온도보다 확실히 낮다면 현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번 기술이 완벽한 것은 아니지만, 기존 도자기 감정법과 결합하면 정확도를 더욱 올릴 것으로 기대된다. <사진=인공지능(챗GPT) 생성 이미지>

UCSD 요아브 바크닌 연구원은 "새 기술이 모든 도자기의 정확한 제작 연대를 알려주는 것은 아니다. 1000년 미만의 비교적 오래되지 않은 유물이나 수십~수백 년 전 정교하게 제작된 위조품에서는 112℃라는 기준을 그대로 적용하기 어렵다"며 "제작 당시의 TRM과 이후 쌓인 VRM의 방향이 우연히 비슷할 경우 두 자기 신호를 명확하게 분리하기 힘든 문제도 있다"고 전했다.

이어 "현재 도자기 유물에는 열발광연대측정과 점토의 광물 조성을 조사하는 암석학적 분석이 사용되지만 각각 위조 가능성 같은 한계가 존재한다"면서도 "VRM 분석을 이들 방법과 함께 사용하면 위조품을 가려낼 확률을 한층 높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학계는 박물관에 소장됐지만 출처가 불분명해 연구에서 제외됐던 유물의 진위를 검증하거나 불법 문화재 거래 과정에서 압수한 유물을 조사하는 데 새 기술을 활용할 수 있다고 기대했다.

김한별 기자 khstar@sputnik.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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