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어떤 현상의 진상이 밝혀지면 과학, 그렇지 않으면 미스터리입니다. 거리가 멀 것 같은 과학과 미스터리가 실은 종이 한 장 차이로 상존하는 셈인데요. 스푸트니크가 발굴한 기묘한 미스터리와 아직 과학이 풀지 못한 기현상을 'SM(Sputnik Mystery)' 코너에서 다룹니다.

지금은 흔적조차 없지만 18세기 영국 런던 동부에는 건물보다 높은 거대 언덕이 존재했다. 당시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랜드마크였지만 누가 언제, 무엇을 위해 만들었는지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화이트채플 마운트(Whitechapel Mount)라 불린 이 언덕은 오늘날 로열 런던 병원 바로 서쪽, 화이트채플 로드 남쪽에 자리했다. 영국 역사학자 대니얼 라이슨스의 1811년 기록을 보면, 언덕은 높이가 8m에 달했고 가로 길이는 100m, 너비는 55m였다. 18세기 중반 그림에 당시 새로 지어진 런던 병원보다 높게 솟은 형태로 묘사됐다.

누가 언제, 무슨 목적으로 만들었는지 아직 불명확한 화이트채플 마운트 <사진=인공지능(챗GPT) 생성 이미지>

언덕에는 나무가 자랐고 정상에는 작은 건물까지 있었다. 사람들이 오르내리는 길도 났다. 정상에 올라 런던 시내와 템스강 일대를 바라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주민들에 무척 익숙한 언덕이지만, 누가 왜 만들었는지 아무도 몰랐다.

가장 오래된 유력한 단서는 17세기 영국 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의회파는 왕당파가 런던을 공격할 것에 대비해 1643년 도시를 둘러싸는 대규모 방어선을 구축했다. 당시 기록에는 화이트채플 지역에 양쪽으로 돌출부를 갖춘 방어진지를 만들라는 명령이 남아있다. 같은 해 현장을 둘러본 스코틀랜드 여행가 윌리엄 리스고도 이곳에 9개의 각을 가진 요새와 도랑, 대포 7문, 경비시설이 있다고 기록했다.

일부 역사학자는 화이트채플 마운트가 이 방어시설의 일부였다고 본다. 실제 주변 고고학 조사에서도 내전 당시 방어선과 관련됐을 가능성이 있는 큰 도랑 흔적이 확인됐다. 다만 전쟁이 끝난 뒤 방어시설은 철거됐다. 언덕의 전부가 이때 없어졌는지 분명하지 않다. 일부 토루가 남았고 이후 다른 물질이 계속 쌓이며 훨씬 거대한 언덕으로 변했을 가능성이 있다.

화이트채플 마운트에 대한 기록이 여럿 존재하지만 정체를 확실하게 밝히지는 못했다. <사진=인공지능(챗GPT) 생성 이미지>

쓰레기 산 가설도 유명하다. 17세기 런던은 급증하는 쓰레기를 처리하기 위해 도시 외곽에 지정 폐기장을 운영했다. 1671년 관련 규정에는 화이트채플도 런던 시내에서 나오는 오물과 쓰레기를 모으는 장소 중 하나로 지정돼 있었다. 당시 생활 쓰레기의 상당 부분은 석탄재였다. 오래된 방어 토루 위에 수십 년 동안 흙과 재, 각종 폐기물이 쌓이면서 사람들이 기억하는 거대한 화이트채플 마운트가 만들어졌다는 이야기다.

1666년 런던 대화재설도 떠돌았다. 도시 대부분을 태운 화재 뒤 막대한 양의 건물 잔해가 발생했고, 이 가운데 일부를 화이트채플의 기존 언덕 위에 버려 규모가 더욱 커졌다는 설이다. 하지만 대화재 잔해가 언덕의 주성분이었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증거는 부족하다.

가장 섬뜩한 것은 페스트 희생자 집단무덤설이다. 1665년 런던에 페스트가 창궐해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자 도시 곳곳에 대규모 매장지가 만들어졌다. 화이트채플 마운트 아래에도 사망자를 묻기 위한 거대한 구덩이가 생겼고, 훗날 그 위를 대화재 잔해로 덮었다는 소문이 퍼졌다.

화이트채플 마운트가 만들어진 가설 중에는 페스트 희생자 집단무덤설 같은 섬뜩한 것도 있다. <사진=인공지능(챗GPT) 생성 이미지>

이 루머는 19세기 초 언덕을 없애기로 결정했을 때도 사람들을 불안하게 했다. 하지만 실제 철거 과정에서 페스트 희생자들이 묻혔음을 보여주는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 당시 기록에 따르면 수많은 수레가 언덕의 흙을 실어 나르는 동안 사람의 유해나 특별한 유물이 발견되지 않았다.

화이트채플 마운트의 운명을 결정한 것은 미스터리가 아닌 땅값이다. 19세기 런던 동부의 부두와 도로가 개발되면서 화이트채플 일대 토지의 가치가 빠르게 올랐다. 런던시는 거대한 언덕을 없애고 땅을 개발하기로 결정했다. 철거는 1800년대 초 기획돼 1807~1808년 본격화했다. 언덕에서 나온 흙과 석탄재는 버려지지 않고 벽돌 재료로 팔렸다. 1809년 법정 기록에도 화이트채플 마운트에서 만들어진 벽돌이 런던 곳곳으로 공급됐다는 내용이 남아 있다.

결국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는 화이트채플 마운트는 수년에 걸쳐 조금씩 깎여나갔고 그 자리에 주택과 도로가 들어섰다. 한때 런던 동부의 풍경을 지배하던 거대한 랜드마크는 그렇게 지도에서 사라졌다.

박지연 기자 yeon@sputnik.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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