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코끼리는 암컷을 중심으로 한 모계사회다. 수컷은 성체가 되면 무리를 떠나는 만큼 새끼 돌봄과 거리가 멀다고 여겨졌다. 그러나 최근 관찰과 선행연구를 종합하면 수컷 코끼리 역시 어린 개체를 보호하거나 사회생활을 가르치는 등 생각보다 중요한 역할을 할 가능성이 있다.
이런 생각이 들게 하는 가장 최근 상황은 케냐 셸드릭 야생동물 트러스트(SWT)에서 벌어졌다. SWT가 지난 6월 말 공개한 영상은 성체 수컷 코끼리의 발밑에서 어린 암컷 사바가 낮잠을 자는 상황을 담아 학자들을 놀라게 했다. 사바가 잠들자 수컷은 자리를 떠나지 않고 곁에 서서 묵묵히 주변을 지켰다. SWT는 이 수컷을 ‘명예 베이비시터’로 표현했다.
사바는 2021년 태어난 개체로, 어미 수니에이는 SWT가 과거 구조해 키운 뒤 야생으로 돌려보냈다. 동영상의 수컷이 사바의 아버지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혈연관계보다는 성체 수컷이 어린 개체의 휴식을 방해하지 않고 곁을 지켰다는 행동 자체다. 일반적으로 아프리카코끼리의 새끼는 어미와 이모·언니 등 암컷 친족들이 공동으로 돌본다. 성숙한 수컷은 무리를 떠나 홀로 생활하거나 다른 수컷들과 느슨한 집단을 이루기 때문에 육아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인식이 강했다.
사실 일련의 행동연구들은 육아에 대한 수컷 코끼리의 이미지를 흔들어 왔다. 영국 엑서터대학교 연구팀은 2020년 보츠와나 마카디카디팬스 국립공원의 수컷 코끼리 관찰 보고서에서 나이가 많은 수컷일수록 이동 집단의 앞에서 무리를 이끄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연구팀은 경험이 많은 성체 수컷이 무리의 어린 개체들에게 물과 먹이를 찾는 길이나 위험한 환경을 통과하는 방법을 가르쳤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성체 수컷의 존재 자체가 어린 코끼리의 행동을 안정시킨다는 연구도 있다. 엑서터대학교 등이 발표한 2021년 조사 보고서를 보면, 나이 많은 수컷이 주변에 있을 때 어린 수컷들은 차량이나 다른 동물에 공격적으로 반응하는 빈도가 낮아졌다. 이는 성체 수컷이 단순한 동료를 넘어 어린 수컷의 사회적 행동을 조절하는 역할을 할 가능성을 보여줬다.
이 주장을 뒷받침한 실제 사례는 남아프리카공화국 필라네스버그 국립공원에서 목격됐다. 1990년대 성체 수컷 없이 성장한 젊은 코끼리들은 비정상적으로 공격적인 행동을 보이며 흰코뿔소 40마리 이상을 죽였다. 공원 관계자들이 타지에서 성체 수컷 6마리를 들여오자 이런 행동이 멈췄다. 학자들은 성체 수컷의 존재가 젊은 수컷의 머스트(번식기 수컷 코끼리가 호르몬의 영향으로 벌이는 행동)를 억제하고 정상적인 사회적 행동을 유지하는 데 영향을 줬다고 추측했다.
물론 수컷 코끼리가 암컷처럼 일상적인 육아를 담당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다만 선행연구들을 종합하면, 어린 개체를 보호하거나 무리의 이동에 도움을 주고, 위험을 판단하는 법이나 사회적 행동을 간접적으로 가르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SWT 관계자는 "특히 나이 많은 수컷은 단순히 번식을 담당하는 개체가 아니라 수십 년간 축적한 경험을 다음 세대에 전달하는 멘토 역할을 할 가능성이 크다"며 "조직적 밀렵이나 개인의 트로피 사냥으로 성체 수컷이 사라지는 것을 학자들이 우려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전했다.
김한별 기자 khstar@sputnik.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