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몸을 회색 털로 뒤덮고 얼굴까지 가린 사람이 새끼 두루미 앞에 앉았다. 손에는 붉은 머리와 긴 부리를 가진 어미 두루미의 머리 모형이 달렸다. 새끼는 이 모형이 주는 먹이를 열심히 받아먹었다.
다소 우스꽝스러운 광경이지만 이유는 진지하다. 부모를 잃은 새끼 두루미가 보호자를 인간이라고 생각하지 않도록 조류학자나 재활센터 관계자들은 철저한 변장 과정을 거친다.
미국 미네소타주 조류학자이자 야생동물 재활사 폭스페더 젠코바는 최근 어미를 잃은 캐나다두루미 새끼들을 이런 방식으로 돌보고 있다. 젠코바는 회색 실로 뒤덮인 특수 의상을 입고 얼굴을 가린다. 손에는 캐나다두루미 특유의 붉은 머리와 눈을 본뜬 모형을 씌우고 기다란 막대를 부리처럼 사용한다. 젠코바가 직접 어글리 맘(못생긴 엄마)이라고 부르는 복장이다.
그가 사람의 흔적을 애써 감추는 이유는 새의 각인이다. 각인은 어린 동물이 생애 초기 특정 시기에 부모나 같은 종의 특징을 빠르게 학습하는 현상이다. 오스트리아 동물행동학자 콘라트 로렌츠의 거위 새끼 연구를 통해 널리 알려졌다.
새끼가 태어나 처음 본 움직이는 대상을 어미로 생각하는 것도 각인이다. 종마다 민감한 시기와 대상이 다르고, 부모를 따라다니는 행동뿐 아니라 성장한 뒤 같은 종을 알아보고 사회적 관계나 짝을 형성하는 데까지 각인이 영향을 줄 수 있다.
때문에 야생으로 돌려보낼 새끼가 사람과 지나치게 가까워지는 것은 문제가 된다. 사람을 먹이를 주는 대상이나 사회적 동료로 학습하면 방사 후에도 사람에게 접근하거나 같은 종과 정상적으로 어울리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두루미 옷을 뒤집어쓰고 키운 보람도 없이 새끼는 야생에 적응하지 못해 죽게 된다.
특히 두루미는 부모에게서 많은 정보를 얻는 새다. 새끼는 부모를 따라다니며 먹이를 찾고 위험을 피하는 방법을 익힌다. 철새 집단에 속한 개체는 이동 과정에서 이동 경로와 중간 기착지까지 학습한다.
젠코바가 보호하는 캐나다두루미 새끼들은 교통사고 등으로 어미를 잃었다. 젠코바는 먹이를 줄 때뿐 아니라 새끼들과 야외에서 활동할 때도 어글리 맘을 착용한다. 거울을 놓아 새끼가 자신을 인지하게 하고, 사육 중인 성체 캐나다두루미를 대리 부모처럼 접촉해 적응력을 높여준다. 다리가 부러진 새끼는 수중 재활훈련까지 실시한다. 이 모든 것이 사람을 잘 따르는 개체를 만드는 것이 아닌, 사람 없이도 살아갈 두루미를 만드는 힘겨운 과정이다.
어미새 변장은 최근 등장한 아이디어는 아니다. 미국에서는 멸종위기에 몰렸던 흰두루미의 복원 과정에서 인간과 접촉을 최소화하는 이른바 코스튬 사육 기법이 발전했다. 미국지질조사국(USGS) 패턱슨트 야생동물연구센터는 1980년대부터 흰두루미 새끼를 키울 때 사육사가 몸과 얼굴을 가리는 흰색 복장을 착용했다. 먹이를 줄 때도 사람 손 대신 성체 두루미의 머리와 부리를 닮은 인형을 이용했다. 젠코바의 경우처럼 새끼에게 필요한 먹이와 보호를 제공하되, 대상이 인간이라는 사실을 최대한 감추는 것이 핵심이다.
이 방법은 흰두루미 복원 프로그램에서 적극 활용됐다. 조류학자들은 사람 목소리와 얼굴 노출을 줄이고 두루미 울음소리와 모형을 더 많이 이용했다. 인간이 두루미의 부모 역할을 하면서도 인간에게 길들지 않도록 하는 역설적인 사육법이었다.
흰두루미 복원 과정에서는 더욱 기발한 방법도 등장했다. 새끼들에게 철새의 이동 경로를 가르치기 위해 사람이 조종하는 초경량 항공기를 따라 날게 한 것이다. 새끼들은 알 속에 있을 때부터 항공기 엔진음을 들었고, 부화한 뒤에는 항공기에 달린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두루미의 접촉음을 따라 움직이는 훈련을 받았다. 당연히 조종사와 사육사는 두루미 어미를 본뜬 복장을 착용했다.
미국지질조사국이 남긴 당시 사진에는 흰색 전신복을 입은 조류학자가 어린 흰두루미 사이를 걷거나, 두루미 머리 모형으로 갓 부화한 새끼에게 먹이를 먹이는 상황이 담겼다. 젠코바의 어글리 맘은 이처럼 수십 년간 이어진 야생조류 복원 기술의 연장선에 있는 셈이다.
젠코바는 새끼들이 충분히 성장하고 같은 종과 어울릴 준비를 마치면 야생으로 돌려보낼 계획이다. 젠코바는 “새끼들의 성공적인 재활의 기준은 저를 알아보고 반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까맣게 잊고 다른 두루미를 따라 떠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한별 기자 khstar@sputnik.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