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볏왕관펭귄(Eudyptes sclateri)’이 산란기 때 첫 번째 낳은 알을 방치하는 이유는 알의 크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뉴질랜드 오타고대학교 연구팀은 12일 미국 온라인 학술지 ‘PLOS One’에 소개된 논문에서 볏왕관펭귄이 애써 낳은 맨 처음 알을 버리는 이유를 규명했다.

멸종 위기에 놓인 볏왕관펭귄은 일부일처제로 모처럼 낳은 첫 번째 알을 키우지 않고 버린다. 펭귄의 산란에는 유독 많은 에너지가 필요함에도 굳이 두 번째 알부터 정성껏 키우는 볏왕관펭귄은 많은 생물학자들의 연구 대상이다.

조사를 이끈 뉴질랜드 오타고대학교 로이드 스펜서 데이비스 교수(68)는 1998년부터 24년간 바운티 제도와 안티포데스 제도를 중심으로 다양한 펭귄들의 생태를 추적·관찰했다.

20년 넘게 볏왕관펭귄 생태를 관찰한 생물학자 로이드 스펜서 데이비스 교수 <사진=로이드 스펜서 데이비스>

교수는 볏왕관펭귄 부부가 포란(알이 부화할 때까지 품는 것) 나흘 만에 첫 알을 방치할 확률이 97%라는 1990년 연구에 주목했다. 이중 58%는 두 번째 알을 낳은 날 첫 번째 알을 내다 버리는 점에 강한 호기심을 느꼈다.

데이비스 교수는 볏왕관펭귄 158마리가 머무는 군락을 들여다본 최근 연구에서 펭귄 부부의 45%가 첫 알을 품지 않고 멀뚱멀뚱 바라보기만 하는 것을 관찰했다. 펭귄들이 낳은 알을 살피던 그는 첫 알과 두 번째 알의 크기가 확연히 다른 점을 눈치챘다.

교수는 “볏왕관펭귄 알은 두 번째가 첫 번째보다 약 85%나 큰 것으로 나타났다”며 “이는 전체 조류 중에서도 두드러진 특징”이라고 전했다.

로이드 스펜서 데이비스 교수가 촬영한 볏왕관펭귄의 알. 왼쪽이 첫 번째, 오른쪽이 두 번째 낳은 알로 크기 차이가 확연하다. <사진=로이드 스펜서 데이비스>

연구팀은 이 점이 볏왕관펭귄이 첫 알을 버리는 결정적 이유이며, 이들의 서식 환경 역시 알을 방치하는 계기라고 추측했다. 데이비스 교수는 “펭귄 대부분은 돌이나 잔가지, 풀로 둥지를 틀고 알을 낳는다. 다만 볏왕관펭귄의 산란 장소는 알이 굴러떨어질 위험이 있는 경사진 바위”라고 지적했다.

즉 그는 볏왕관펭귄들이 바위 지형에서 품기 힘든 작은 알을 일부러 버리는 것으로 생각했다. 14개 둥지 주위에 고리를 설치해 알이 굴러떨어지지 않도록 조치한 실험에서도 볏왕관펭귄들은 첫 알을 품으려 들지 않았다.

볏왕관펭귄의 포란은 약 35일 이어진다. 수컷과 암컷이 번갈아 알을 품는데, 첫 번째 작은 알을 방치하는 습성은 수컷의 성격과도 관련이 있다는 게 연구팀 입장이다.

첫 번째 낳은 알을 일부러 버리는 것으로 유명한 볏왕관펭귄 <사진=로이드 스펜서 데이비스>

일반 펭귄 수컷은 번식기에 남성 호르몬 테스토스테론이 늘고 암컷은 줄어든다. 다만 볏왕관펭귄의 혈액 조사 결과는 정반대였다.

데이비스 교수는 “동물 대부분은 번식기에 수컷끼리 공격적으로 싸우는데 볏왕관펭귄 수컷들은 얌전하고 순종적”이라며 “번식기에도 우뚝 선 아무것도 하지 않는 볏왕관펭귄 수컷의 성향은 첫 번째 알을 방치하는 원인의 하나일 것”이라고 말했다.

뉴질랜드 고유종인 볏왕관펭귄은 ‘슐레이터펭귄(Sclater penguin)’으로도 불린다. 몸길이 최대 70㎝, 체중 6㎏까지 자란다. 부리에서 눈 위를 가로질러 머리까지 뻗은 길고 화려한 노란 깃털이 특징이다. 고립된 환경에 사는 이 펭귄은 기후변화 등의 영향으로 개체 수가 감소, 멸종 위기종으로 지정됐다.

이윤서 기자 lys@sputnik.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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