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체파 화가 피카소의 전기 작품에 작은 강아지 한 마리가 숨은 사실이 확인됐다. 흥미로운 발견을 가능하게 해준 것은 형광 X선 장비다.

미국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은 17일 공식 채널을 통해 피카소가 19세에 그린 걸작을 X선 장비로 들여다본 결과, 작가에 의해 감춰진 흰색 강아지가 드러났다고 밝혔다.

이 작품은 '르 물랭 드 라 갈레뜨(Le Moulin de la Galette)'다. 1900년 파리 몽마르트르에 존재했던 댄스홀 물랭 드 라 갈레뜨는 그림을 좋아하는 부자들이 자주 출입해 가난한 화가들의 데뷔 무대로 통했다. 르누아르도 이곳을 배경으로 '물랑 들 라 갈레뜨의 무도회'를 그렸다. 

막 20대를 앞둔 젊은 피카소 역시 밤마다 펼쳐지는 무도장의 황홀한 풍경을 캔버스에 담았다. 다만 그의 눈에는 웃고 떠드는 사람들 틈에 빨간 리본으로 멋을 낸 사랑스러운 강아지가 들어온 모양이다.

젊은 시절 피카소의 작풍을 느끼게 해주는 '르 물랭 드 라 갈레뜨'. 강아지는 물병과 잔이 놓인 흰색 테이블 아래 그려졌다가 검게 덧칠됐다. <사진=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공식 홈페이지>

구겐하임 미술관 복원팀 관계자는 "댄스홀 물랭 드 라 갈레뜨는 화려함과 퇴폐적 분위기가 공존한 곳"이라며 "혼돈의 시대, 화가를 지원하는 부유층과 돈에 고생하는 노동자들이 신분과 관계없이 머물 수 있는 특별한 장소였다"고 전했다.

이어 "그림이 완성된 지 120여 년 동안 우리가 알지 못했던 강아지는 춤추고 떠드는 사람들 사이에 있었다"며 "미술관의 소장품 일부를 형광 X선 장비로 분석하는 과정에서 희미하게나마 강아지의 형체가 떠올랐다"고 덧붙였다.

복원팀은 피카소가 이 강아지를 멀쩡하게 그려 놓고 나중에 검게 덧칠해 지웠다고 판단했다. 복원팀 관계자는 "사실 2017년 이 그림에 안료를 덧칠한 흔적이 있다는 건 밝혀졌다"며 "아마 피카소는 그림 애호가들이 귀여운 강아지에 너무 집중하지 않을까 염려한 듯하다"고 추측했다.

'르 물랭 드 라 갈레뜨'의 테이블 밑에 그려졌던 강아지. 왁자지껄한 무도회를 주제로 한 그림인 관계로 사람들이 강아지에 집중하지 않도록 덧칠한 것으로 보인다. <사진=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공식 홈페이지>

이 작품은 기하학적 표현과 어두운 색조로 대표되는 피카소 중후반기 작품들과 달리 생동감 있는 화면과 채색이 돋보인다. 미술사학자들은 이 그림이 아직 젊고 작가로서 야심에 불타는 피카소의 마음을 표현했다고 평가한다.

새로운 기술을 통해 명화에 숨은 비밀이 100년 넘게 지나 드러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X선 장비 분석을 통해 1885년 완성된 그림 '농부 여인의 초상'에서 고흐의 자화상이 뒤늦게 발견됐다.

사실 우리가 익히 하는 명화들은 과학기술과 하나로 연결돼 있다. 과학기술은 오래된 미술품을 복원하거나 색을 되살리는 데 일조해 왔다. 특히 X선 장비는 위조 여부를 감정하거나 이번처럼 그림 속에 숨은 재미있는 요소들을 알려주기도 한다.

이윤서 기자 lys@sputnik.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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