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농도에 노출되면 목숨을 잃고 마는 맹독성 화합물 시안화수소(HCN)가 아이러니하게도 지구 생명 탄생의 기본이었을지 모른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스웨덴 샬머스공과대학교 연구팀은 23일 조사 보고서를 내고 얼어붙은 시안화수소에서 DNA의 재료가 생성되는 과정을 확인했다고 전했다. 이번 성과는 미국화학회(ACS)가 발간하는 ACS Central Science 최신호에 먼저 실렸다.

시안화수소는 '007' 시리즈 등 첩보영화에 자주 등장한다. 무색 무취이기 때문에 누군가를 은밀하고 신속하게 처치할 때 독극물로 사용된다. 시안화물이란 특정 독약의 이름이 아니라 탄소와 질소가 결합된 시안기를 가진 화합물이다. 청산가리(시안화칼륨)도 이 그룹에 속한다. 이 물질들은 체내에서 세포가 산소를 이용하는 것을 막기 때문에 흡입 또는 삼키면 몇 분 안에 질식해 사망한다.

세포가 일상적으로 시안화물을 생성하는 것을 보여주는 실험 사진. 오른쪽 용기는 시안화물 농도가 높아 푸르게 발광했다. <사진=샬머스공과대학교 공식 홈페이지>

시안화수소가 지구 생명의 탄생에 필수적인 역할을 했을 가능성은 전부터 제기됐다. 미국 사우스다코타주립대학교 연구팀은 지난해 낸 조사 보고서에서 시안화수소가 체내 세포의 대사나 신경전달, 면역반응 등 복수의 기능에 중요한 역할을 할 가능성을 제기했다.

위 사진은 포유류 세포가 만들어낸 시안화물을 가시화했다. 오른쪽 용기는 시안화물 농도가 높아 푸르게 발광했다. 왼쪽은 농도가 낮은 샘플이다. 학자들은 이를 통해 세포가 일상적으로 시안화물을 생성한다고 확인했다.

시안화수소가 생명 탄생 과정에서 벌어지는 화학반응의 원천이라고 본 연구팀은 컴퓨터 모델링을 이용해 동결 상태의 시안화수소를 다각적으로 실험했다. 이 과정에서 시안화수소가 이소시아니드 수소로 변환되는 두 경로를 특정했다. 이소시아니드 수소는 시안화수소의 원자 배열이 바뀐 것으로 반응성이 더 활발하다.

동결된 시안화수소 표면에서 일어나는 화학반응의 개요도. 규칙적으로 늘어선 시안화수소(HCN) 결정에서 수소 원자가 이동하면서 더 반응성이 높은 이소시아니드 수소로 변하는 것을 보여준다. <사진=샬머스공과대학교 공식 홈페이지>

연구팀은 시안화수소가 물과 반응해 폴리머(중합체), 아미노산, 그리고 DNA의 기초가 되는 핵산 염기를 생성하는 것을 알아냈다. 이것들은 생명을 구성하는 단백질이나 유전 정보의 토대가 된다. 더욱이 동결된 시안화수소 결정의 표면은 일반적으로 한랭한 환경에서는 일어나지 않는 화학반응을 촉진하는 것도 발견했다.

샬머스공대 마틴 람 연구원은 "우리 몸은 로다니스(Rhodanese)라는 효소에 의해 항상 제어된다. 이는 체내 시안화수소를 독성이 없는 염류로 변환해 몸 밖으로 배출하는 기능을 한다"며 "우리 발견은 지구 생명의 수수께끼를 풀 중요한 단서인 동시에, 유사한 환경을 가진 다른 행성의 생명체 탐사에도 유용하다"고 자평했다.

시안화수소를 얼리면 붉은 원처럼 길쭉한 바늘 형태의 결정체가 돼 마치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얽혔다. 이 특수한 구조가 넓은 표면적을 만들어내 생명 탄생에 필요한 화학반응의 무대가 됐을 가능성이 있다. <사진=NASA·칼텍 공식 홈페이지>

연구팀이 시안화수소를 얼리자 아래 사진의 붉은 테두리처럼 길쭉한 바늘 모양의 결정체가 돼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얽혔다. 이 특수한 구조가 넓은 표면적을 만들어 생명 탄생에 필요한 화학반응의 무대가 됐다고 연구팀은 봤다.

시안화수소는 사실 우주 곳곳에 존재한다. 태양계 내 행성이나 위성의 대기는 물론, 우주를 가로지르는 혜성에서도 검출됐다. 해왕성의 성층권에는 시안화물 벨트가 있고, 토성의 위성 타이탄도 시안화수소를 포함한 층을 가졌다. 수수께끼의 항성간 천체 쓰리아이 아틀라스(3I/ATLAS)가 일시적으로 푸르게 빛난 것도 시안화수소의 영향이다.

이번 연구 결과는 지구 생명의 탄생에 얽힌 비밀을 밝히고 외계 생명체를 탐사하는 데 유용한 정보가 될 전망이다. <사진=pixabay>

마틴 람 연구원은 "시안화수소는 독극물이지만 생명의 기원을 밝힐 중요한 요소"라며 "시안화수소가 어떻게 생명을 촉진하는지에 대한 이해는 우주 생명체를 찾는 연구에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연구원은 "생명의 기초에서 시안화물의 역할은 결코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1952년 그 유명한 밀러-유리 실험에서도 그 징후는 파악됐다"며 "우리 실험은 아무 것도 없던 원시 지구를 시뮬레이션하고 무엇이 생명에 필요한 불꽃을 튕겼는지 들여다보는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정이안 기자 anglee@sputnik.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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